지난해 국내 백화점업계는 실적 잔치를 벌였다. 명품 열풍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면서 롯데쇼핑·신세계·현대백화점 3사의 백화점 부문 영업이익은 전년(총 6591억원)보다 48.1% 증가한 9764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다.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들이 날이 갈수록 고령화하고 있어서다. 미래 주력 소비계층인 2030세대는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지면서 백화점을 찾는 발걸음이 뜸해졌다. 손님들의 고령화는 실적 개선 뒤에 가려진 백화점업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현대百의 도전
2020년 취임한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사진)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그는 취임 후 “현대백화점을 ‘젊은 백화점’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그 역할을 현대백화점이 직접 운영하는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 ‘피어’ 전담팀에 맡겼다. 사내 임원 회의 등에서는 “피어 매장은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좋다”고도 했다.
대신 색다른 도전을 주문했다. 김 사장은 “피어의 성공 기준은 매출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지 여부”라며 “수익성과 타협해 새로운 시도를 포기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김 사장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피어는 2년 전부터 기존 백화점의 문법을 깨는 실험을 시작했다. 인적 구성부터 바꿨다. 피어 전담팀은 리더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을 모두 입사 5년차 전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 구성했다.
평균 연령은 32세. 현대백화점 상품본부 전체 팀 중 가장 어린 조직이다. 순혈주의가 강한 현대백화점이지만 다양한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비유통사 출신 외부 인재도 채용했다.
매장 규모도 키웠다. 작은 공간에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현대백화점 신촌점과 무역센터점, 더현대서울 등에 입점한 피어 매장은 다른 영패션 매장 평균 크기의 세 배가 넘는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영패션 부문은 젊은 층이 주고객인 만큼 객단가가 낮다”며 “이런 매장에 넓은 공간을 내준다는 것은 그만큼 수익성을 포기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호응하는 고객들
직매입 비중도 대폭 확대했다. 재고 부담을 감수하면서 소규모 신진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매입해 소비자들에게 선보였다. 기존 백화점에선 볼 수 없던 브랜드를 피어를 통해 선보이자 젊은 소비자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지난 1분기까지 피어를 통해 새로 현대백화점그룹 통합 멤버십 회원이 된 소비자는 2만여 명에 달한다. 이 중 2030 소비자 비중은 80%가 넘는다. 피어에서 구매한 뒤 현대백화점을 다시 찾는 재방문율 또한 60% 이상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피어는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2030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한 하나의 콘텐츠”라며 “젊은 소비자를 백화점으로 이끄는 ‘앵커 콘텐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좋다”는 김 사장의 말이 무색하게 매출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피어 매출은 100억원으로 전년(30억원)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는 피어 매장을 10개까지 늘려 170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게 현대백화점의 목표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