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실질적인 지배 주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다. 올해 단체교섭에서 (현대차·기아 공동투쟁을 통해) 그룹 대표인 정의선 회장과 담판을 지어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식지에 담긴 노동계의 얘기다. 노동계는 소식지에서 "정의선 회장에 맞서 원·하청, 그룹사 노조 역량을 총동원해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0여 년 간 현대차노조와 기아노조가 최소한의 교섭시기 조절이나 연대투쟁 없이 사측이 최고로 바라는 상황을 만들어줬다"는 인식이다. 금속노조 주문에 현대차·기아 노조는 '공동투쟁의 깃발을 들자'며 올해 임단협을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년 간 현대차 노조는 파업 없이 사측과 무분규 타결을 이뤄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선 실리성향의 이전 노조 집행부 임기가 끝나고 강성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투쟁 기조를 앞세우고 있다.
노조가 이번 임단협을 벼르고 있는 이유는 우선 회사 실적이 매우 좋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1분기 매출 30조2986억원, 영업이익 1조9289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10.6%, 16.4%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2014년 2분기 2조872억원 이후 8년(31분기) 만의 최대치다. 기아는 분기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8.8%로 2012년 2분기(9.8%) 후 약 10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안현호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지난 10일 사측과 상견례에서 "번 만큼 받아야 한다"며 "교섭이 빨리 끝나는 것은 회사에 달려 있다"고 압박했다. 현대차 노조 내 일부 조직은 "기본급은 10만원 이상 올리고 성과금은 2021년 지급분 2340만원의 두 배인 4680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가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또 다른 기반은 인플레이션이다. 최근 물가가 급등하면서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얘기가 일상이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카카오 등 IT 기업이 연봉을 대폭 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차와 기아의 호실적을 이끈 것은 근로자들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철강재 등 원재료값 인상분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며 역대 최대 수준의 호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차량의 대당 평균가격은 처음으로 4000만원을 넘어섰다. 오히려 근로자들은 반도체 수급난 등에 따른 생산차질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글로벌 전기차 전쟁을 치르기 위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것도 현대차그룹엔 부담이다. 경쟁 완성차 기업들이 조 단위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인건비 부담은 투자 속도를 늦출 수 있다. 현대차·기아 노조는 임금인상뿐 아니라 "전기차 공장 신설 시 국내를 투자 우선 시하겠다"고 약속하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노조가 생각하는 임금인상 요인은 분명한 반면 사측도 지나친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국내 제조업 전체 노사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현대차·기아 임단협에서 올해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되는 이유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