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은 제38조, 제39조에서 사업주에게 안전조치의무, 보건조치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제63조에서는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도급인도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한 안전 및 보건조치의무를 이행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 제2조에서는 건설공사의 종류를 나열하면서 건설공사발주자는 도급인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고,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를 발주자로 정의하고 있다(7호, 10호, 11호).
이러한 규정을 종합하면 건설공사발주자는 법에서 정한 안전 및 보건조치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반면, 건설공사도급인은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소정의 책임도 동일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건설공사를 발주한 경우에도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는 경우에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실무에서는 어떠한 경우에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가 해석상 빈번하게 문제된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최근 하급심 판결에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 취지 및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는 실제로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아니한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해야 할 지위에 있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전제에서, ① 도급하는 건설공사가 도급인의 사업의 일부를 구성하고 도급인의 사업과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주화하여 도급에 의하여 행하는 경우, ② 도급하는 건설공사에 관하여 도급인의 지배하에 있는 특수한 위험요소가 있어, 도급인이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고서는 수급인이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안전·보건조치를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고 도급인의 총괄·관리가 필수적인 경우, ③ 도급인과 수급인의 각 전문성, 규모, 도급계약의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도급인에게는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할 능력이 있는 반면에 수급인에게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정한 안전·보건조치를 스스로 이행할 능력이 없음이 도급인의 입장에서 명백한 경우, 발주자(도급인)는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할 지위에 있는 자로서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의 책임을 진다’고 판시하였다(울산지방법원 2021. 11. 11. 선고 2021고단1782 판결).
이러한 해석은 시공의 주도적인 총괄·관리 여부를 ‘당해 건설공사가 사업의 유지 또는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인지, 상시적으로 발생하거나 이를 관리하는 부서 등 조직을 갖추었는지, 예측 가능한 업무인지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는 등 발주자가 규범적으로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할 지위에 있는지’를 판단기준으로 하는 고용노동부의 입장과도 유사한 것으로 보이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된 이후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의 구별기준에 관한 사실상 유일한 판결이기 때문에 향후 실무에 있어서 실질적인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먼저 판결이 들고 있는 전제에 동의하기 어렵다. 건설공사발주자 해당 여부는 형사처벌 가능성을 결정하는 해석인데, 문언의 의미를 넘어서는 위와 같은 해석이 가능한지 극히 의문이다. 또한 판결이 제시한 기준 중 첫 번째 기준인 ‘도급하는 건설공사가 도급인의 사업의 일부를 구성하고 도급인의 사업과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그렇게 해석하게 되면 대부분의 건설공사발주자가 도급인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생산 시설에 대한 유지·보수를 위해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모든 발주자가 도급인으로 해석되는 불합리가 발생하게 된다.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를 명시적으로 구별하지 않았던 구 산업안전보건법(2019. 1. 15. 법률 제1627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이 시행되고 있을 당시에도 판례는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한 사업재해 예방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도급사업주’를 ‘사업의 일부를 도급한 발주자 또는 사업의 전부를 도급받아 그 중 일부를 하도급에 의하여 행하는 수급인 등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있는 사업주’로 해석하여(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5도8621 판결 등), 발주자가 사업의 전부를 도급(발주)하는 등 공사의 진행을 시공사 등에게 일임하여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과정을 총괄·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없는 경우에는 발주자를 도급사업주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개념을 분리하여 도급인의 책임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위 판례의 입장을 반영하여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지 않은 건설공사발주자를 도급인의 정의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으로 명문화하였다. 이러한 도급인의 정의에 대한 기존 판례의 해석, 산업안전보건법의 연혁을 고려하면, 위 하급심 판결이 제시하는 도급인 여부에 대한 첫 번째 판단 기준은 건설공사의 시공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건설공사발주자까지도 도급인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구체적 타당성을 결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합리적인 해석 방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추후 유사 사안에서 위 판결의 첫번째 기준이 도급인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지를 주시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