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당시 30대 중반의 오너일가인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회장이 회사 경영진으로 합류했다. 조 부회장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장손녀이자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의 맏딸이다. 부친인 조 회장을 대신해 회사 경영을 주도할 조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만큼 경영진 합류를 놓고 주변의 의구심은 컸다.
하지만 우려를 뒤로 하고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고 인수·합병(M&A)에 나서는 등 사업재편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회사 시가총액도 그가 합류하기 직전과 비교해 8배가량 뛰었다.
몸값 2조4000억원 증가한솔케미칼은 지난 6일 유가증권시장에서 6500원 내린 24만2000원에 마감했다. 6일 이 회사 시가총액은 2조7431억원으로 집계됐다. 조 부회장이 경영진으로 참여하기 직전인 2014년 2월 말(주가 3만250원) 시가총액(3417억원)과 비교해 702.8%(2조4014억원) 불었다.
이 회사 시가총액을 밀어 올린 것은 불어난 실적이다. 2013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170억원, 277억원으로 집계됐다. 2009년~2013년 영업이익은 200억~280억원 수준을 오갔다. 이 회사는 조연주 부회장이 합류한 이듬해부터 실적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2019년 영업이익 1114억원을 거둬 1980년 출범한 이후 처음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1519억원, 1976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2212억원으로 사상 처음 20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주가와 실적이 급속도로 좋아지는 만큼 국민연금과 기관투자가의 사랑도 받고 있다. 국민연금(12.69%) KB자산운용(5.03%) VIP자산운용(5.02%) 등이 이 회사 지분을 적잖게 보유 중이다. 테이팩스 인수·상장 주도한솔케미칼은 반도체를 깎거나(식각) 세척할 때 쓰는 과산화수소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제품을 삼성전자, 삼성SDI, 한솔제지 등에 납품하면서 안정적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조 부회장은 전문경영인인 박원환 사장과 함께 2014년부터 회사 경영을 주도하면서 변화를 시도했다.
1979년생인 그는 미 명문여대 웰슬리대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와 빅토리아 시크릿의 애널리스트로 근무한 경력도 있다. 2014년 3월 한솔케미칼에 기획실장으로 합류해 기획실장으로 인수·합병(M&A)과 신사업 전략을 짰다. 범삼성가 중 4세가 사내이사로 경영 전면에 등장한 첫 사례다.
2016년 재무적 투자자(FI)와 손잡고 전자소재용 테이프와 반도체 소재를 생산하는 테이팩스를 1260억원에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듬해 테이팩스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IPO)하기도 했다. 테이팩스는 공모 당시인 2017년 10월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1085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성장세가 빨라지면서 지난 6일 시가총액은 4113억원으로 뜀박질했다. 한솔케미칼은 비주력 사업은 수술대에 올렸다. 실적이 나빠지는 자회사 한솔씨앤피(현 자안바이오) 지분 50.08%를 2020년 240억원에 매각했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사업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연간 750t을 생산하는 실리콘 음극재를 2023년까지 1500t까지 늘릴 계획이다.
회사 경영권도 차츰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월 조 회장의 주식 15만7000을 증여받으면서 보유 지분이 1.40%(16만1080주)로 대폭 늘었다. 박원환 사장과 함께 회사 경영의 '투톱' 역할을 이어가면서 승계 기반을 닦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조 부회장은 한솔케미칼 사내이사 역할을 수행하며 경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한솔케미칼 40년사'를 통해서 "한솔케미칼의 성장을 위한 노력은 성급하지도 과하지 않다"며 "확실하고 대범하고 거시적으로 미래의 성장을 약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