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새 행정수반(행정장관)에 경찰 출신인 존 리 전 정무부총리가 당선됐다. 친중파가 장악한 1400여 명의 선거인단 중 94%가 단독 출마한 그를 선택했다. ‘선출’이라기보다 중국 당국의 ‘지명’이라고 보는 게 맞다. 보안장관 시절인 2019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한 그를 중국 정부는 홍콩의 새 지도자로 낙점했다. 1997년 홍콩 주권이 반환된 이후 행정 관료가 아니라 경찰 출신이 행정수반을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콩에는 공안정국의 그늘이 한층 더 짙게 드리우게 됐다. 리 당선인은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최우선 순위 중 하나로 두겠다고 공약했다. 중국 정부는 2020년 7월 시행된 홍콩보안법과는 별도의 보안법을 홍콩이 제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다국적 기업과 금융자본, 인재가 또다시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홍콩보안법 사태 때도 미국이 홍콩에 부여했던 특별지위를 폐지하면서 헥시트(홍콩+엑시트)가 이뤄졌다. 소니엔터테인먼트와 루이비통, 로레알 등이 홍콩사무실 직원 일부를 싱가포르 등지로 이전 배치했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미국과 홍콩을 해저 데이터 케이블로 연결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중국이 홍콩에 엄격한 코로나 통제 정책을 강요하면서 금융권 고급인력 이탈도 늘고 있다.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에서는 지난해 주니어급 직원의 약 25%가 그만두는 등 전체 직원의 10% 이상이 퇴사했다. 홍콩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보다 4% 줄었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 기술주를 대표하는 홍콩 항셍지수는 올 들어 6년 만에 20,000 선 아래로 밀려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이 홍콩 증시에서 자금을 빼내고 있어서다.
중국은 인구 2500만 명인 ‘경제 수도’ 상하이를 한 달 이상 봉쇄하고 있다. 오는 9월로 예정됐던 항저우 아시안게임도 연기했다. 3연임을 노리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방역 성과를 체제 우월성과 집권 연장의 선전도구로 활용해온 탓에 봉쇄 정책을 포기할 수 없는 덫에 빠졌다. 중국은 지난해 홍콩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인단에 친중 인사를 늘리고 민주파 정당 인사가 참여할 여지를 없앤 홍콩행정장관 선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일국양제의 틀이 무너지고, ‘홍콩의 공산화’가 이뤄졌다는 평가다. 홍콩이 국제 금융허브의 위상을 되찾는 일은 요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