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근택 거르고 김한규'…민주당 제주을 공천 막전막후[도대체 무슨일이]

입력 2022-05-07 10:00
수정 2022-05-08 08:31

‘문재인의 남자 vs 이재명의 남자’

6·1 제주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더불어민주당 내 두 신인 정치인의 맞대결 구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달 초 나란히 제주을 출마를 선언한 김한규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현근택 전 이재명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이 그 주인공이다.

김 전 비서관은 지난달 28일까지 약 1년간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근무해 ‘문재인의 남자’로 불린다. 서울대 학사·하버드대 석사에 김앤장 변호사 등 ‘엄친아 스펙’을 보유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고정 패널로 오랫동안 출연해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인지도도 높은 편이다.

역시 변호사 출신인 현 전 대변인은 지난 20대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돌격대장’을 자처했다. 각종 TV·라디오에 출연해 ‘대장동 의혹’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 전 지사를 적극 옹호하면서 인지도를 높였다. 때로는 자신의 고교(제주제일고)·대학(서울대) 직속 선배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고성이 오가는 설전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제주에서 초·중·고를 나온 서울대 출신 변호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던 두 사람의 대결 구도는 지난 4일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김 전 비서관을 전략공천하기로 결정하면서 싱겁게 끝이 났다.

김 전 비서관은 “믿고 써달라, 기대보다 잘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 전 대변인은 “부족한 탓에 선택을 받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실제 전략공천 결정이 나기 전까지 두 사람은 마음을 졸여야 했다. 민주당이 두 사람이 아닌, 나아가 민주당 소속 다른 인물도 아닌, ‘제 3의 인물’을 선택할 가능성 때문이었다.

기자는 전략공천 결정 바로 전날인 지난 3일 <민주당, 제주을 보궐선거에 ‘국힘 출신’ 공천 검토> 기사를 보도했다. 민주당 내 한 인사로부더 “제주을에 국민의힘 소속 인물을 영입해 공천한다는 움직임이 있어 당황스럽다”는 말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한 제주 지역 언론도 ‘민주당 내에서 부상일 변호사를 후보로 영입하려고 한다는 설이 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부 변호사는 검사 출신 변호사로 2008년 18대 총선에서부터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제주을에 출마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매번 민주당 후보에 밀려 뱃지를 달지 못했다. 지난달 29일에도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 입문 후 줄곧 국민의힘에 몸담은 인물을 민주당에서 영입하려 한다는 말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즉시 민주당 전략공천위원회 동향에 정통한 사람을 찾아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힘 소속인 부 변호사를 영입하면 제주을은 물론 제주지사 선거에도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며 실제 관련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민주당은 부 변호사가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준석 대표의 국민의힘이 한 지역구에서 3회 이상 낙선한 후보는 공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부 변호사는 이미 제주을에서 세 번 출마했고 이번이 네 번째 도전이다.

김한규·현근택도 이런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긴박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은 부상일 공천을 막기 위해 이원욱 전략공천위원장과 윤호중 비대위원장을 연달아 만나는 등 막판까지 전력을 다했다.

국힘 인사를 제주을에 공천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민주당 지지층은 크게 동요했다. 한 지지자는 “젊고 능력있는 김한규, 현근택이 멀쩡하게 있는데 어디서 근본 없는 국힘 것을 데려오느냐”고 했다. 다른 지지자는 “민주당 위해 열심히 일한 현근택, 김한규 놔두고 국힘 출신 영입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현 전 대변인은 다음날인 4일 오전 10시에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상일 영입의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당시 기자회견에는 ‘검수완박’ 통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처럼회’ 소속인 박주민 김용민 장경태 의원 등이 참석해 지원사격을 했다.

그로부터 3시간여 뒤인 오후 1시 20분, 민주당 비대위는 김 전 비서관을 제주을 전략공천 후보자로 전격 발표했다. 논란이 됐던 ‘부상일 카드’를 접고 김 전 비서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비대위의 결정에는 부 변호사가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이 제주을을 ‘험지’로 판단해 부 변호사에 대한 ‘3회 이상 낙선 패널티’를 면제해줬기 때문이다. 실제 부 변호사는 국민의힘에 공천 신청을 완료했다.

그러자 이번엔 김한규 공천 자체가 정치권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지지자 중에서는 김 전 비서관 공천에 대해 "성품이 바르고 매사에 신중한 인물을 잘 뽑았다"며 긍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반면 이재명 전 지사 지지자나 소위 ‘개딸’들은 “현근택만큼 전투력을 갖고 이재명을 최전선에서 옹호한 사람이 없는데 공천을 주지 않은 것은 너무한 처사”라며 당을 비난하고 나섰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결과에 대해 “민주당의 ‘스펙열등감’이 작용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 전 의원은 “말 그대로 현 변호사가 ‘토사구팽’ 당한 것”이라며 “김 전 비서관 공천은 ‘민주당의 진짜 욕망과 운동권의 열등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도 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