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과학관과 함께 하는 과학 이야기 (11)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각종 전기 제품의 플러그가 플라스틱으로 덮여 있는 것도 전기가 밖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과 달리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이 있다. ‘전도성 고분자’라는 물질이다.
전도성 고분자에 관한 이야기는 약 50년 전인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도쿄공대의 시라카와 히데키 교수 연구팀은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아세틸렌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연구원이 실험 도중 실수로 원래 넣어야 할 양보다 무려 1000배나 많은 화학 약품을 폴리아세틸렌에 넣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물질은 원래 얻었어야 하는 것과는 겉보기부터 완전히 달랐다. 검은색 분말 형태의 고분자 재료가 됐어야 할 물질은 마치 금속처럼 은색 광택을 띠는 얇은 막이 돼 있었다. 시라카와 교수는 이 물질이 금속과 비슷한 성질을 지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폴리아세틸렌에 특정한 성분을 첨가하면 전기가 흐르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수로 과량 첨가한 시약이 고분자 사슬의 결합을 끊었다 붙였다 하면서 전기를 흐르게 한 것이다.
그의 연구는 외국에도 알려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의 화학자 앨런 그레이엄 맥더미드 교수, UC 버클리의 물리학자 앨런 히거 교수와의 공동 연구로 이어졌다. 이들은 1977년 국제 학술지에 ‘전기가 흐르는 고분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고, 이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아 200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시라카와 교수가 발견한 전도성 고분자는 아직 활용 범위가 넓지는 않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제외하면 상용화한 것이 많지 않다. 전도성이 기존 소재보다는 낮은 편이고 고분자 사슬 구조를 고르게 배열하기 어려워 품질 저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도성 고분자는 금속이나 실리콘으로 만든 전자 재료에 비해 쉽게 늘어나거나 휘어지고 무게도 가벼워 활용 가능성이 높은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전도성 고분자를 전자 제품에 활용하면 금속 소재를 쓸 때에 비해 훨씬 가볍게 만들 수 있다. 폴더블폰을 비롯해 화면을 접거나 구부릴 수 있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데도 전도성 고분자는 꼭 필요한 소재다.
전도성 고분자를 잘 활용하면 금속 없이 플라스틱으로만 만들어진 전자 제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실수를 실수로만 넘기지 않고 세심히 관찰한 연구자의 집념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놓았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국립과천과학관 이해랑 연구사
울산과학기술원 화학공학과
포항공대 화학공학 박사
국립과천과학관 공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