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매입은 대표적인 주가부양 수단 중 하나입니다. 회사가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면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줄어 주주들이 보유한 기존 주식의 가치가 오르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회사 내부정보를 얻기 쉬운 경영진들이 자사주 매입 공시를 낸다는 것은 주가가 '바닥'이라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집니다. 지금과 같이 증시가 침체기인데다 대부분 기업들의 주가가 부진할 때, 자사주 취득은 가장 활발합니다.
하지만 유독 최근 2~3년간 자사주 매입의 '약발'이 안 먹히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임원진들이 대거 자사주 매입 대열에 합류했던 삼성전자의 경우만 봐도 그렇습니다.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이 지난달 26일 보통주 8000주를 매수했고 같은달 15일 한종희 부회장이 1만주를 사들였습니다. 이에 앞서 노태문 사장과 박학규 사장이 각각 8000주, 6000주를 매입하는 등 최고 경영진들이 잇따라 자사 주식을 매입했습니다. 인내심이 바닥난 건 개인투자자(개미)만이 아닌가 봅니다. 회사가 최고경영진뿐 아니라 주요 임원들을 대상으로 자사주 매입을 독려하는 메일을 보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임원진 총동원에도 삼성전자 주가는 여전히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3월 들어 자사주 매입이 본격화했지만 주가는 아랑곳 않고 내렸습니다. 주가가 작년 초 9만6800원을 터치할 당시 수많은 개미들이 '10만전자' 고지 등극을 꿈 꿨지만 지금은 6만원선 사수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작년 말 '8만전자'가 깨졌고 올해 3월 들어 '7만전자'에서도 밀려났습니다. 당장 3월 첫거래일(7만1700원) 종가와 비교해도 현재 주가(5월 6일 종가)는 7% 넘게 밀린 상태입니다.
너도나도 자기 회사 주식을 샀다는데 왜 주가에 반응이 없을까요? 개별 기업들의 사정이 다른 만큼 그 이유를 한 마디로 특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적어도 자사주 매입이 늘 호재일 수만는 없다는 논리를 설명해 주는 자료를 찾았습니다. 작년 8월 한국증권학회에 실린 논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시장 충격기의 자사주 매입에 대한 시장반응 변화'입니다.
투자자들은 시장 충격기에 이뤄지는 자사주 매입에 대해 다양하게 반응합니다. 기업가치가 저평가로 인해 일시적으로 떨어진 것인지, 거시적인 불황으로 인해 하락한 것인지 구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논문은 코로나19 시기 자사주 매입을 할 경우 시장 반응이 그 이전에 비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론을 공개했습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코스닥 기업에서 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풀어 적으면 주식시장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로 공시되는 자사주 매입의 정보 신호를 신뢰하지 않는 겁니다. 증시가 불안한 상황에선 자사주 매입 공시가 줄을 이어도 개미들이 이를 저평가 신호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같은 결론을 얻기 위해 논문의 저자인 박경희 한남대 교수는 2016년 1월부터 2020년 2월까지의 기간을 '코로나19 이전 시기'로 특정해 표본 363건을 추렸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집단감염이 본격화한 2020년 3월부터 주가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한 그해 6월 말까지의 기간을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주가가 급락한 시기'로 설정, 표본 76건을 수집했습니다.
연구 결과 박 교수는 자사주 매입을 꾸준히 해온 기업과 아닌 기업의 시장 반응이 다르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시장이 코로나19 전부터 '반복적으로' 자사주 매입을 하면서 배당을 대체해 온 기업의 자사주 매입 공시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한 반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자사주 매입 공시를 낸 기업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기업이 주가가 저평가 된 시기 자사주 매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신뢰를 쌓게 되면, 시장 충격기가 왔을 때 주가 하락을 훨씬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과거 자사주 매입의 경험이 자사주 매입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박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시장 충격기엔 거시적인 환경 변화로 인해 대부분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평소에 자사주 매입을 통해 정보 신뢰성을 구축해 놓으면 위기가 나타났을 때도 주가 관리에 용이할 것"이라며 "투자자들도 이를 한 지표로 활용해 지속적으로 자사주 매입을 실천하고 있는 기업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