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도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해보면 어떨까요?”
2016년 어느 날, “책을 여러 사람이 같이 읽으면 깊이 읽게 된다”는 시아버지(최병일·독서토론 강사·69)의 얘기를 듣던 며느리(김예원·36)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자신의 속마음을 가족에게 털어놓는다는 민망함보다 가족과 더 깊이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이 앞섰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시아버지와 며느리는 다른 가족도 끌어들여 한두 달에 한 권씩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두 사람은 그동안 나눈 대화를 담아 《한 지붕 북클럽》이란 책을 내놨다.
4일 만난 두 사람은 “독서토론 덕분에 가족 간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했다. 독서토론 멤버는 최씨를 중심으로 아들 부부, 딸 부부, 막내딸까지 여섯 명이다. 떨어져 살다 보니 코로나19 발생 전에도 비대면으로 모였다. 카카오톡, 줌 미팅을 활용한다. 최씨는 “독서토론으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서로의 차이점을 알게 된 것”이라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했다.
며느리 김씨는 독서토론 덕분에 부부싸움에서 해방됐다고 했다. 그는 “신혼 때는 싸움이 잦았는데 결혼 1년 뒤 독서토론을 시작하면서 확 줄었다”며 “독서토론이 없었다면, 그래서 서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생각하기도 싫다”고 손사래를 쳤다.
최씨와 김씨는 가족 독서토론의 최대 장점으로 “대화 소재가 끊이지 않는 점’을 꼽았다. 최씨는 “지갑도 두툼하고 외모도 멀쩡한데 가족과 소통이 안 돼서 ‘허망하고 외롭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며 “이런 사람들에게 가족 독서토론은 특효약이 될 것”이라고 했다.
책은 이들 가족에게 얘깃거리만 준 게 아니었다. 가족 산책과 가족 여행도 안겨줬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남한산성을 걷는 식이다. 《한 지붕 북클럽》도 전남 고흥, 충남 보령, 경기 파주 등을 함께 여행하며 썼다. 독서토론의 매력에 푹 빠진 김씨는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서토론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들려주는 ‘성공적인 가족 독서토론’을 위한 첫 번째 팁은 “무턱대고 시작하지 말라”다. 먼저 규칙부터 정하라는 얘기다. 이들은 평등한 토론을 위해 서로 존댓말을 쓴다. 모든 의견을 존중하는 ‘비경쟁 독서토론’을 지향한다. 최씨는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려면 짜임새 있게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독서토론 전에 논제를 공유한다.
최씨는 “자신이 감명받았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독서와 토론을 강요하면 아이들은 도망간다”며 “아이가 원할 때까지 부모는 그저 꾸준히 독서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고른 다음 독서토론 책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올해 2월 말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이 남긴 말을 함께 읽고 삶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할 계획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