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은 디지털 시대를 가속했다. 빨라진 배달 문화, 영화관이 불필요한 넷플릭스의 성장 등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변화로 새로운 시장 기회가 창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세계인들이 콘텐츠에 몰입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한국의 ‘K콘텐츠’ 경쟁력이 돋보이게 됐다. 디지털 시대, 온라인 문화상품으로서 한류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기생충, 미나리, 오징어게임, BTS 등 한류를 선도하는 작품과 아이돌그룹으로 인해 전 세계가 열광했고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국제 이슈에 민감하고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세터 역할을 해온 영국에서도 한류의 증거를 볼 수 있다. 단적인 예가 런던 교외 지역인 코밤(Cobham)이다. 이곳엔 코리아 코티지(Korea Cottages)로 불리는 10여 채의 주거단지가 있다. 왜 코리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 단지를 지은 사람이 1896년 발생한 ‘아관파천’ 사건을 뉴스에서 접하고 단지명을 붙였다고 한다.
한류가 유행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트라팔가 광장과 내셔널갤러리, 버킹엄궁전 등이 밀집한 관광중심지 소호(SOHO) 지역은 젊은이들과 관광객으로 항상 북적인다. 여기에 특이한 이름의 BUNSIK(분식), OSEYO(오세요) 등의 낯익은 한글 발음의 간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한국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과 현지인이 운영하는 치맥집도 있다. 이 거리는 이웃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빗대 ‘K스트리트’라고 불린다. BUNSIK은 한국 분식집처럼 핫도그, 떡볶이를 팔고 있는데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장점을 살려 큰 인기를 끄는 힙한 장소가 됐다.
한글 간판은 아니지만, 친숙한 이름이 올 4월 중순에 등장했다. 38개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취급하는 퓨어서울(PureSeoul)이다. 이곳은 구제 의류를 팔았던 장소를 임차해 새롭게 한국 화장품 브랜드 매장을 선보였다. 기존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제품을 섞어 파는 편집숍에서 탈피해 한국 제품만 취급하는 전용 숍이 탄생한 것이다. 퓨어서울은 3명의 영국 창업자가 기존 온라인 판매에 한계를 느끼고 고객 반응을 체험하는 오프라인 1호 매장을 론칭한 데서 출발했다. 연내 2호점을 영국 제2의 도시인 버밍엄에 개설할 계획이다.
스트리토노믹스(Streetonomics)는 거리 이름을 통해 도시와 도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사회·공학적 분석법이다. 런던 거리는 영국 왕실, 정치인, 군인의 이름을 많이 붙였고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다. 특이한 점은 국제화 수준을 보여주듯 외국인 이름을 14.6% 쓰고 있다. 폴란드, 자메이카, 쿠바 등 국가 명칭을 거리 이름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런던 K스트리트의 탄생은 한국의 문화적 경쟁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더 많은 비즈니스 진출 기회로도 볼 수 있다.
차이나타운이 밀집되고 정체된 느낌의 사각형 모습이라면 K스트리트는 양쪽으로 쭉 확장하는 직선의 느낌이다. 플랫폼이 디지털 시대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스트리트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중심축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모델을 구축하는 것에 비즈니스의 성패가 달려 있다. 온오프라인 한류를 기반으로 K스트리트가 런던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