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북한산 산행' 협상…美 5G 장비시장 또 뚫었다

입력 2022-05-03 22:07
수정 2022-05-04 07:09
지난해 9월 삼성전자의 5세대(5G) 장비 공급 역량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찰리 에르겐 디시네트워크 창업자(회장)는 삼성전자와의 회의를 하루 앞두고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에르겐 회장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서울 북한산 등반을 제안받았다. 등산 애호가인 에르겐 회장은 이 회장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고 5시간 동안 산행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6시간 둘만의 소통 시간 가져 3일 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북한산 등반에서 디시네트워크의 5G 통신장비 수주를 사실상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예정된 비즈니스 미팅 시간은 한 시간 이내였지만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에르겐 회장과의 대화 시간을 6시간으로 늘린 게 수주로 이어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은 에르겐 회장이 킬리만자로와 에베레스트 등 세계 명산을 등반할 정도로 등산 전문가라는 점에 착안해 이 같은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직접 차량을 운전해 에르겐 회장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 그를 태우고 북한산까지 이동했다. 이날 등산은 오전 11시30분께부터 5시간가량 수행원 없이 진행됐다. 개인적인 일상 이야기부터 삼성전자와 디시네트워크의 향후 협력 방안까지 폭넓은 분야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통신장비 경쟁력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고, 에르겐 회장도 열린 마음으로 이 부회장의 얘기에 귀 기울였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5G 통신장비 기술력도 에르겐 회장을 설득하는 데 뒷받침됐다. 삼성전자는 디시네트워크에 공급하기로 한 ‘가상화 기지국’ 기술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2’에서 ‘CTO(최고기술책임자) 초이스’를 수상하기도 했다. ‘JY 네트워크’로 시장 공략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전자의 과거 5G 통신장비 공급계약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2020년 세계 최대 통신사인 미국 버라이즌과의 7조9000억원 규모 통신장비 계약을 할 때도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와의 친분을 적극 활용했다. 이 부회장은 베스트베리 CEO가 스웨덴 통신장비 제조사 에릭슨의 CEO였던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CEO의 사업에 대한 이해도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같이 갖춰져야 점유율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6세대(6G) 이동통신 기술과 관련해서도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이달 13일엔 통신 기술 저변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6G와 관련한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함께 ‘삼성 6G 포럼’을 처음으로 연다. 이번 포럼에는 제프리 앤드루스 미국 텍사스대 교수와 나카무라 다케히로 NTT도코모 SVP(수석부사장) 등이 참석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