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에도…메리츠증권 '나홀로 질주' 왜?

입력 2022-05-02 17:54
수정 2022-05-03 00:42
메리츠증권이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2824억원을 거뒀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금리 상승 여파로 다른 증권사들이 일제히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내놓은 것과 대비된다.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호실적의 배경으로 꼽힌다.

2일 메리츠증권은 1분기 당기순이익(연결 기준)이 28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4%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0조8235억원으로 123.7% 늘었다. 영업이익도 3769억원으로 32.4% 증가했다. 순이익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사상 최대다.

올 1분기 금리가 급등하는 와중에도 채권운용 부문에서 흑자를 낸 게 ‘깜짝실적’의 주된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증권사들은 대형사 기준으로 자기자본 20조원 내외를 채권에 투자한다. 메리츠증권의 채권 투자 규모는 17조~18조원이다. 메리츠증권은 올 1분기 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다른 증권사들에 비해 리스크 관리에 적극 나선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보유 채권의 만기를 축소하고 국채선물 매도 전략 등을 활용해 금리 상승에 따른 채권 평가 손실을 최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 상승에 대비해 신흥국 채권, 여신전문금융회사채 등 고위험 채권 비중을 줄인 것도 채권운용 부문 흑자를 내는 데 도움을 줬다는 설명이다.

다른 증권사들은 1분기 채권운용 평가손실과 수수료 수입 감소로 타격을 받았다. NH투자증권의 1분기 순이익은 102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60.3% 감소했다. KB증권과 신한금융투자 순이익도 각각 1159억원, 1045억원으로 47.9%, 37.8% 줄었다. 미래에셋, 한국투자, 삼성증권 등은 아직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다.

메리츠증권은 금리 상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본부 단위로 있던 리스크 관리 기능을 하나의 본부로 합쳤다. 장원재 세일즈앤트레이딩(S&T) 부문장이 2020년 12월 선임되면서 주식·채권 운용에 대한 리스크관리 역할을 맡았다. 장 부문장은 취임 전 메리츠화재에서 리스크관리팀장을 지낸 ‘위험관리 전문가’다.

수익구조도 다각화했다. 메리츠증권은 한 비상장사 투자 회수로 900억원가량의 수익을 거뒀다. 에너지 산업과 관련한 거래를 통해 약 500억원, 중국 하이난항공그룹(HNA) 관련 대출 이자로 400억원의 수익을 냈다. 이에 힘입어 과거 순이익에서 40% 이상을 차지하던 부동산금융 비중은 30%대까지 낮아졌다.

성과중심 경영 방식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2009년 업계 17위 중소형사였던 메리츠증권은 수익의 최대 절반을 돌려주는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인재를 끌어모았다. 대형사 간판 없이도 실적을 내는 ‘프로’들이 모이면서 연 9500억원(작년 기준)의 영업이익을 내는 대형사로 성장했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메리츠에서는 운용직뿐만 아니라 관리직군도 실력을 입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호실적이 나오자 주가도 급등했다. 이날 메리츠증권은 4.27% 오른 6830원에 마감했다. 올초 이후 상승률은 35%에 달한다. 다른 증권주가 잇달아 52주 신저가를 찍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는 9.8% 하락했다. 주주환원 정책도 주가 상승을 떠받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메리츠증권은 자사주 소각을 전제로 34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했다. 올 3월에도 1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