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사진)이 고심을 거듭했던 임기 말 사면 카드를 끝내 접었다.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강행으로 급랭한 정국에서 여론 반대가 큰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에 대한 ‘패키지 사면’을 밀어붙일 경우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인사와 달리 여론이 우호적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경제계 인사들의 사면까지 무산됐다.
여권 관계자는 2일 “사면이 무산된 것은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이 전 대통령 등 사면과 관련해 “국민 공감대가 판단 기준”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사면 가능성을 높게 보는 기류가 어느 정도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등 ‘패키지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 인사들의 사면에 대해 반대 여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달 29일부터 이틀간 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1012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한 결과 이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찬성 응답은 40.4%, 반대는 51.7%로 집계됐다. 김 전 지사는 찬성 28.8%, 반대 56.9%였고 정 전 교수는 찬성 30.5%, 반대 57.2%였다.
이 부회장의 사면에 대해서는 찬성 68.8%, 반대 23.5%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부회장만을 대상으로 한 ‘원포인트’ 사면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쪽으로 청와대 내부 의견이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사면을 밀어붙일 경우 문 대통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여권 전체가 여론의 역풍을 맞을 우려도 크다.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라디오에서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지사, 정 전 교수, 이 부회장 등의 사면과 관련해 “상당한 국민적 반발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면 움직임이 검수완박 입법으로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은 것과 시기적으로 맞물린 것도 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을 국무회의에 올려 공포해야 하는 역할도 맡아야 할 처지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국무회의 짐까지 짊어진 상황에서 사면까지 강행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끼워넣기 사면’에 대한 비판도 문 대통령에게 부담이 됐다. 실제로 국민의힘에서는 이 전 대통령 사면에 측근인 김 전 지사를 끼워넣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김 전 지사의 사면이 핵심이고 여기에 이 전 대통령을 끼워넣으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법률가 출신이라 자신의 명분, 논리 등을 중시한다”며 “끼워넣기 정치사면 비난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면이 물 건너가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이달 취임한 뒤 오는 8월 15일 ‘광복절 특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경우 국민 통합 차원에서 정·재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이 단행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임도원/김동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