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계약한 차 타지도 못했는데 구형됐다"…분노 폭발

입력 2022-05-02 09:43
수정 2022-05-02 14:44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최악의 ‘출고 지옥’이 더 악화되고 있다. ‘유럽 올해의 차’를 수상한 기아 EV6에는 ‘예약 러시’가 이어지고 있지만 출고 기간이 18개월로 전월보다 2개월 더 늘어났다. 현대차 아이오닉 5와 제네시스 GV60는 여전히 12개월이 걸리고,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8개월에서 9개월로 납기가 지연됐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며 생산량이 곧 판매량으로 직결되는 상황인 만큼 ‘출고 대란’이 길어지는 것은 전기차 전환시기에 부정적인 지표”라고 설명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5월 현대자동차·기아 주요 차종의 예상납기일이 4월보다 더 길어졌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이 길어지는 데다 중국 상하이 봉쇄로 인해 ‘와이어링 하니스(전선 뭉치)’ 수급도 원활하지 못해서다. 현대차·기아는 베트남·캄보디아(와이어링 하니스), 캐나다(에어백 컨트롤 유닛) 등으로 부품 수급지역을 넓혀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납기 기간이 긴 주요 차종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다. 수요가 많은 데다 하이브리드카용 엔진 반도체 소자(ECU)가 부족해서다. 기아 EV6는 지금 주문하면 모든 차량이 1년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기아 차종 중에선 니로 하이브리드만 11개월에서 10개월로 대기 기간이 줄었지만, 이 역시 긴 수준이다. 하이브리드용 ECU 수급난에다 하만카돈 스피커의 제품 부족도 한 몫 거들었다.

스포티지와 쏘렌토 하이브리드는 18개월 이상, K8 하이브리드는 12개월 이상 걸린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지난달 8개월 대기에서 이달 9개월 대기로 늘어났다. 싼타페 하이브리드와 투싼 하이브리드는 12개월이 걸린다. 아반떼 하이브리드도 12개월로 대기가 1개월 길어졌다. 현대차의 주요 전기차인 아이오닉 5, GV60는 12개월 이상, G80 전기차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현대차·기아 차종 중에서 납기 기한이 전달보다 빨라진 차량은 거의 없다.


차량을 계약한 소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기아는 이날 K8의 연식변경 모델(사진)을 출시했는데, 차주들 사이에선 “지난해 계약한 K8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구형 차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아는 생산시점에 고객에게 2023년 모델로 계약을 변경할지, 취소할지를 물어본 뒤 생산을 한다. 2022년 모델은 생산을 서서히 멈추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가 주문받고도 생산하지 못한 내수 ‘백오더’ 물량은 100만대 이상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출고 대란을 뚫고 현대차·기아가 반도체를 해외 물량에 집중하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면서도 “반도체 수급 관리 등 공급망 관리가 올해뿐 아니라 향후 실적 향상의 핵심 능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