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재건축·재개발과 부동산 대출 등 규제 완화의 방향과 속도를 두고 부동산 관계부처 장관 후보자들이 시장에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를 내면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둔 1일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새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관련 공약은 정상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심에서 다양한 주택 수요에 적극 대응하려면 재건축·재개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부동산시장에 대해서도 “일부 국지적 가격 불안 조짐이 있으나 시장 불안세로 볼 상황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이에 비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와 관련해 “집값 자극이 없도록 시장 상황을 면밀히 고려해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장 상황에 대해서도 “아직 시장 과열 여파가 남아 있는 상황”이라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시 가격이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총리 후보자와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부동산시장 상황과 규제 완화에 대해 시장에서 상반되게 해석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원 후보자는 1기 신도시 재건축과 관련해선 “질서 있게 꾸준히, 그리고 서서히 하겠다”면서도 “일부러 시간을 끌지는 않겠다”고 해 모순인 듯한 발언을 내놨다.
추 후보자와 원 후보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를 두고도 다른 목소리를 냈다. 추 후보자는 “기존 DSR 규제의 골격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원 후보자는 “DSR이 청년에게 좀 불리하다”며 “내집 마련 기회의 격차를 완화하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규제 완화를 늦추겠다는 것인지, 서두르겠다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비판이 많다. 부동산시장을 안정시켜야 할 필요성과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어야 하는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부동산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값 자극 vs 표심 좌우…스텝 꼬이는 부동산 정책
대출규제 DSR 두고도 추경호·원희룡 '엇박자'차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혼란스러운 건 ‘집값 잡기’와 ‘6월 1일 지방선거 승리’라는 두 가지 목표가 상충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선 공약대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추진하자니 집값 상승이 우려되고, 속도 조절에 나서자니 ‘공약 번복’ 비판에 직면해 지방선거에서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해관계가 얽힌 특정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분출되면서 ‘표심’에 따라 정책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1일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 관련 메시지가 오락가락했다’는 지적에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데 안철수 (인수)위원장이나 대변인이 정확하게 무게를 둬서 조율을 안 하다 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을 일이 그렇게 됐다”며 “밖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나 싶기도 한데 일일이 반응하는 것은 지나치게 민감할 수가 있다”고 했다.
인수위는 지난달 25일 1기 신도시 재건축과 관련해 “중장기 국정과제로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일자 이틀 뒤 안 위원장이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때 특별법 제정을 통해 1기 신도시 재건축의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용적률을 높여 경기 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지역에 신규 주택 10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윤 당선인 측과 국민의힘은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가 다음달 1일 지방선거, 특히 수도권에서 핵심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경기지사 출마로 공석이 된 경기 분당갑 보궐선거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 내에서는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재건축 규제 완화가 집값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매수심리)는 대선 이후 새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세제 등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로 7주 연속 상승했다가 지난주(90.5) 소폭 하락했다.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여부를 놓고서도 인수위 내부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관련해 청년층 등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과 집값 자극이 우려되는 만큼 규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도원/김인엽/하헌형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