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서울 찾은 팀 버튼 "비극도 재미있게 표현하고 싶다"

입력 2022-05-01 17:25
수정 2022-05-02 00:16

‘팀 버튼’은 하나의 장르다. 1990년대 영화 ‘배트맨’과 ‘가위손’을 시작으로 판타지 영화의 문법을 새로 썼다. 팀 버튼의 스타일을 뜻하는 ‘버트네스크(Burtonesque)’란 단어가 생길 정도다.

팀 버튼 감독(64)이 10년 만에 서울을 다시 찾았다. 지난 50여 년간 영화 제작에 영감을 준 일러스트, 회화, 사진, 조각 등 총 522점을 모아 ‘더 월드 오브 팀 버튼전’을 선보인다. 전시는 그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10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개막 하루 전(4월 29일) 전시장(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그는 “누구든 ‘나도 그릴 수 있다’는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전시회를 꾸몄다”며 “나이와 관계없이 어릴 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더 월드 오브 팀 버튼전’은 그의 두 번째 월드투어 프로젝트다. 2012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공동 기획한 첫 월드투어는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을 거쳐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열렸다. 이번 전시는 팀 버튼 프로덕션이 10년 만에 자체 기획한 월드투어다. 서울은 그가 두 번째 월드투어의 첫 번째 장소로 택한 곳이다.

버튼은 “10년 전 광장시장에서 먹은 부침개와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계속 생각났다”며 “존경하는 건축가인 고(故) 자하 하디드의 명작(DDP)에서 꼭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DDP 건물 안에 설 때마다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버튼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캐릭터는 ‘오해받는 낙오자’다. 가위손으로 살아야 했던 인조인간 에드워드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98억 년을 산 비틀쥬스가 그렇다. 버튼이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 안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도 뚜렷한 자기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힘이 여기에 있다.

소외되고 기괴한 주인공들은 버튼의 세계에선 한없이 따뜻하고 친근하다. 자신만의 엽기적 유머 감각과 재기발랄한 감수성, 코믹한 설정으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 슬프지만 웃기고, 우울하지만 아름답고, 무섭지만 친근한 의외성이 모여 버튼의 세계를 만들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그는 “삶이란 결국 죽는다는 측면에서 비극이지만, 살면서 모든 비극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며 “비극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일이 좋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는 버튼이 캘리포니아 예술대에 다니며 필기했던 노트와 스케치, 영화 세트의 배경이 된 일러스트와 캐릭터의 초기 드로잉, 디즈니에 보냈던 제안서 등이 함께 전시됐다. 그의 예술세계를 만든 최초의 아이디어가 궁금한 이들에겐 신선하다. 다만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구성을 찾기 어려운 점, 영화의 스케일에 비해 한참 못 미치는 스케치 작품들을 연달아 봐야 하는 지루함은 아쉽다. 전시는 오는 9월 12일까지.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