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
현대미술 추상화가 고가에 팔렸다는 뉴스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 중 하나다. 무엇을 그렸는지도 알 수 없고, 전달하려는 의미도 불분명한데, 작품 가격에선 ‘억’ 소리가 난다.
그 대표 주자가 한국 미술 교과서에까지 나오는 잭슨 폴록(1912~1956)의 ‘number 1’(1949) 등 추상화 연작이다.
미국 출신인 폴록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 ‘흘리는’ 드리핑 기법을 고안했다. 나무 틀도 없이 화포(畵布)를 바닥에 널어놓고, 붓을 들고 돌아다니며 물감을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어낸 그림은 아무렇게나 물감을 흘린 자국처럼 보인다. 1950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폴록의 작품이 처음 소개됐을 때, 평론가들은 “조화와 기법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혼돈”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곧 폴록의 그림은 ‘극한의 추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현대미술의 주류로 부상했다. 폴록이 등장하기 전까지 추상화엔 어렴풋하게나마 형태가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입체주의)나 살바도르 달리(초현실주의) 등은 물론 ‘추상의 선구자’ 몬드리안과 칸딘스키의 그림에서도 선과 면 등 기하학적 요소는 존재했다. 하지만 폴록의 그림에는 아무 모양이 없다. 스토리는 물론 형과 색 등 ‘그림 밖’의 모든 요소를 빼고, 물감과 평면이라는 ‘회화의 본질’로 승부하자는 게 폴록의 생각이었다.
폴록이 물감을 대충 뿌린 것은 아니다. 그는 “작업하는 순간마다 미적 질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직관적인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오래 바라보면 묘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혁신적인 발상과 기법, 미적 감각과 완성도가 어우러진 폴록의 그림은 색면추상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 사조인 단색화에 이르는 여러 미술운동의 뿌리가 됐다. 이를 계기로 ‘미술 변방’이던 미국은 현대미술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다. 폴록의 그림이 비싼 이유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