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도 돌아다니고 냄새도 역대급이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웠는지…"
29세 여성 A 씨는 홀로 '쓰레기 집'에 살고 있다. 지인으로부터 아동 학대 신고를 당한 후 세 살배기 아이는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청소 봉사 헬프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클린어벤져스' 이준희 대표는 A 씨의 집을 본 후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튜브 클린어벤져스를 통해 공개된 A 씨의 집은 수많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짐을 치우려고 물건을 들어 올리면 숨어있던 바퀴벌레들이 숨바꼭질하듯 금세 숨어버렸다. 이 대표는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지인이 저는 고마울 지경"이라며 "이 상태에서 여기서 키우는 건 학대가 맞다"고 A 씨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A 씨 스스로가 '쓰레기 집'을 청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앞서 A 씨는 전문기관을 통해 청소를 진행했었으나 유지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스트레스받아서 손을 놔버린 상황"이라며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바퀴벌레 때문에 힘들다"고 토로했다.
집안 살림을 치울수록 냄새는 심했고, 이곳저곳에서 바퀴벌레가 득실거렸다. 이 대표는 "음식물 쓰레기는 왜 쌓아놓는 거냐. 불편하지 않으냐"며 "아이가 있는데 이렇게까지 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A 씨는 아버지의 폭력을 참다못해 17살 때 가출을 했고 이후 남자친구의 집 등을 전전하며 지냈다고 했다.
아이의 친부 B 씨에 대해 "서로 연락이 아예 끊긴 상태"라며 "사실 (아이 친부는) 남자친구가 아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가출한 A 씨는 머물 곳을 찾다 채팅 어플을 통해 B 씨를 처음 만났다. A 씨는 "그의 집에 갔는데 그 사람 와이프가 있었다. (나를) 사촌 여동생이라고 얘기를 하고 (그 집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같이 지내면서 관계를 요구했고, 당시 나갈 곳이 없어서 승낙했다. 결국 임신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A 씨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B 씨는 자기 아내와 상의를 한 후 "애를 낳아 달라"고 했다고. 그는 "가까운 데 집을 얻어줄 테니 애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남자도 만나지 말고 일해서 양육비를 대라고 했다"며 "(그 집에) 아이가 안 생기니 그런 조건을 건 것 같다"고 귀띔했다.
기회를 보던 A 씨는 B 씨의 집에서 도망쳐 미혼모 시설로 들어가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시설에서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룸메이트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A 씨는 독립했으나 결국 이런 상태가 됐다.
A 씨의 집은 처음부터 이런 상태는 아니었다.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쓰레기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친구 남자친구가 청소를 도와줬는데 다시 더러워지자 기껏 도와줬더니 집이 왜 이 꼴이냐며 아동 학대로 신고했다. 시설에선 집 정리될 때까지 아이를 맡고 있겠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A 씨는 "스트레스받아 나도 모르게…"라며 아이를 때린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청소 작업을 통해 깨끗해진 집을 마주한 A 씨는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 직원은 "방역 작업까지 해 놓은 상태인데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어벤져스 측은 "처음 사연을 접하고 하루라도 빨리 아이와 엄마가 만나길 바랐으나 집을 청소하며 마주한 모습은 일반적인 부모의 모습과는 달랐다"며 "한 번의 청소로 아이가 돌아오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고, 신고를 한 지인의 마음을 십분 헤아릴 수 있었다"며 씁쓸한 속내를 드러냈다.
영상이 공개되자 네티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일각에서는 "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 것은 학대가 맞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건 아니지 않을까. 본인이 상처가 있다고 해서 아무 죄도 없는 아이까지 방치하면 안 됐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다시 쓰레기 집으로 반복될 것 같다" 등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이 젊은 엄마는 심리 상담이 필요하며 도움과 지도가 필요하다", "현재 상황을 A 씨의 책임이라고만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힘내서 일하고 마음 잘 추슬러서 상황이 개선되길 바란다",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온 것 같다. 악플이나 쓴소리보다 치료가 필요하다" 등의 반응도 많았다.
이 대표는 한경닷컴에 "이렇게 쓰레기 집에서 갇혀 계신 분들이 생각보다 정말 많은데 보통 경제적 상황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원룸 입주 청소가 15~20만 원 선이라면 쓰레기가 무릎에서 허리까지 찼을 경우 60~80만 원이 든다"면서 "거기다 우울증, 무기력증까지 앓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도와드리지 않으면 고독사하거나 안 좋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 꺼내드리지 않으면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다. '구해드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며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걸 통해 밖으로 나오는 연습을 하다 보면 사회활동도 하고 행복했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쓰레기까지 집에 쌓아두고 치우지 않는 저장강박증 환자가 늘면서 새로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저장강박증이란 강박장애의 일종으로 필요없는 물건까지 집 안에 계속 쌓아두고 정리를 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집에 쌓아두기도 한다.
저장강박증은 2013년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분류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장강박증 발병 원인은 현재까지 뚜렷하게 알려지는 바는 없지만, 보통 스트레스나 우울증 등으로 인해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보상 심리로 나타나거나, 사람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지 못하는 독거인에게서 많이 관찰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계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성장과정에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도 부모 역할을 제대로 하면서 사랑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A 씨가 부모로부터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는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겪었으며 이후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라면서 "스스로를 돌보지도 못하는데 아이까지 돌봐야 하는 버거운 상황이 된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사례자와 같은 경우 주거, 직업, 치료 3가지 지원이 고르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쓰레기집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최근 2~3년 사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쓰레기집 안에 아동학대, 고독사, 극단적 선택 등 범죄 및 사망 사건으로 연결될 수 있어 관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