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선물을 보면 IP 비즈니스의 길이 보인다 [어쩌다 워킹맘]

입력 2022-04-28 09:04
수정 2022-04-28 09:05


[한경잡앤조이=박소현 블랭크코퍼레이션 PRO] “어린이날 선물로 뭐가 받고 싶어?”

“토토로 인형.”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받고 싶다고 했던 토토로였다. 이미 레고가 준비되어 있어 토토로는 다음에 사자 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나와는 달리 아이는 잊지 않았나 보다.

지난 겨울쯤이었다. 코로나로 주말 집콕 중인 우리는 아이와 함께 볼 영화를 찾고 있던 와중 OTT에 있는 ‘이웃집 토토로’에 아이가 관심을 보이자 남편의 눈이 반짝였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즐겨보는 남편과 달리 애니메이션을 전혀 즐겨보지 않는 나였다. 이전에 본적도 없을 뿐더러 내 취향도 아니었기에 썩 내키지 않았지만 우리집 두 남자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우연히, ‘이웃집 토토로’를 접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 회사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IP(지적재산권) 회사와의 라이선싱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IP 커머스(콘텐츠 IP를 커머스로 풀어내는 것)로 확장하는 새로운 비즈니스였다. 우리가 잘하는 브랜드 비즈니스, 커머스에 IP를 접목시키는 형태였는데 문제는 내가 IP에 문외한이라는 것이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아 스타워즈나 토이스토리 같은 명작도 본적이 없던 나는 (당연하게도) ‘비즈니스’를 ‘비즈니스’로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규모를 파악하고 자료를 검토하고, 여러 글을 찾아보면서 또한 왜 우리가 이 사업을 하는지, 담당자와 경영진과의 수차례의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보도자료를 준비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보도자료 초안을 완성하고 경영진 보고를 마쳤는데 전화가 왔다. D(나의 보스를 D로 지칭하려고 한다.) 였다.

그는 ‘경험’을 강조했다. 단순히 상품을 파는 커머스가 아닌 IP 커머스를 통해 IP가 가진 세계관을 경험하는 것. 그리고 IP에 대한 본인의 ‘동심’을, 경험을 얘기했다. (홍보업무를 하며 처음으로) 보도자료를 다시 써야할 것 같았다. 완전히.

생각해보면, 지금은 관심사가 아니지만 내게도 열광했던 IP들이 있었다. 인형놀이 덕후였던 나는 미미와 바비 인형이 열댓 개가 넘었는데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가 모두 버려서 매우 속상해했었다. 수능을 치기 전 과외 선생님이 엿 대신 사다 준 바비인형과 거대한 바비인형의 집을 선물 받고 감동받은 기억도 바로 그런 것 때문 일거다.

중학교시절 아이돌도 빠질 수 없다. H.O.T의 토니안 사진을 구하려고 문방구에 부리나케 달려갔던 기억, 웃돈을 주고서라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구하려던 기억, 파랗고 노란 모자와 바지, 눈이 달린 먼지모양 집게까지 지금은 돈을 주고 입으라고 해도 기겁할 옷들을 사고 입고 했던 그 기억 말이다.


이제는 잊고 있었던, 그리고 그게 뭐라고 그랬나 싶은 ‘현실을 사는 목표주의자’에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비즈니스를, ‘세계관에 대한 경험’을, 글과 말로 가장 와 닿게 푸는 스토리텔링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부분이나 낯선 개념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리고 남편은 우리가 토토로를 보게 된 그 주말, 답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감동적이네.”
“뭐가?”
“내가 어릴 때 좋아했던 만화를 내 아들이 본다는 게.”

소파에 앉은 두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토리와 캐릭터. 장면의 아름다움, 음악까지 모든 게 완벽했던 1988년의 걸작은 내가 7세 아들의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동심과 거기에 몰입한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각이 묘하게 어우러져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했다.

아이는 그 후로도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다. 우리는 다 함께 콧노래로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토토로 그림을 그려 보고, 우스꽝스러운 모양이 되었지만 쿠키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 세대를 아우르는 강렬한 경험, 그리고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든 ‘이웃집 토토로’야 말로 D가 나에게 설명했던 ‘IP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그 해 연말, 회사에서는 작은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전사회의에 맞춰 전 직원에게 레고 선물과 함께 사내 곳곳에 귀여운 산타 플레이모빌을 전시하고 증정하는 깜짝 이벤트였다. 전사회의를 준비하면서 D는 본인이 IP커머스를 준비하며 느낀 경험들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던 직원들을 보며 그는 직원들에게 경험을 나누는 이 순간의 ‘경험’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행복해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새기기 위해 말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생각보다 가격이 비싼 토토로의 굿즈들을 쇼핑하며 새삼 IP의 위력을 느끼고 있다. 더 비싼 돈을 주더라도 살 만한 가치가 IP 굿즈에는 녹아 있으니까. 그리고 레고와 옥토넛의 각종 탐험선(제발 이제 그만 좀 만들길.)에 이어 다양한 토토로 캐릭터 선물을 요구하는 아이와 함께 나는 오늘도 강렬한 IP커머스를 경험하는 중이다.

박소현 씨는 올해 7살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이다.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자,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 브랜드 빌딩 비즈니스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 커뮤니케이션 담당 프로로 제 2의 인생을 설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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