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입을 닫을 수 없고 혀를 감추지 못하는 날, 입술 근육 좀 풀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이 독사처럼 꿈틀거린다.”
170만 부 이상 팔린 초베스트셀러 《언어의 온도》(이기주)의 한 대목이다. 그제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에게 ‘그런 날’이었나 보다. 그는 한 라디오 프로에 출연해 “퇴임 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걸고넘어지면 물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사방에서 비난받는 ‘주군’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물어버리겠다”니…. 뱉으면 다 말이라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탁 비서관 언행의 품위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여기(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나 묻고 싶다”고 비아냥대고,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을 때도 ‘신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했었다”며 윤 당선인을 일본에 비유해 문 대통령에게 ‘경고’까지 받았다. 종편 방송을 비난하면서는 “티비조선 같은 것”, “얼빵한 지적” 등 저잣거리 언어들을 늘어놨다.
말은 사람의 품격을 비추는 거울이자, 집단의 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다. 비속어나 막말은 그 사람이나 집단의 인격과 정신세계를 의심하게 한다.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여권 인사와 지지자들의 언어 사용이 한층 거칠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20·30세대를 ‘개딸’ ‘양아들’이라고 한다. 개딸은 ‘개혁의 딸들’, 양아들은 ‘양심의 아들’의 줄임말이라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호전적인 어감을 노린 조어법으로 보인다. 흡사 조국 사태 때 ‘조국 지지 촛불 시위’를 주도한 친문 단체 ‘개국본’을 떠올리게 한다. 개국본은 ‘개싸움국민운동본부’의 약자다.
막말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해야 할 곳이 북한이다.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 같은 표현들도 북한 지도자들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말은 결국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법이다. 탁 비서관의 ‘물어버리겠다’는 말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입마개 안 하고 데리고 다니면 문재인 대통령이 벌금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저열한 말을 막기 위한 용도로도 입마개는 필요할 듯하다. 탁현민은 어쩌다 개를 자처한 것인지….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