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추월하는 게 빠를까, 대만에 따라잡히는 게 먼저일까. 최근 동아시아 3국의 경제성적표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개는 일본의 쇠락과 한국의 선방(?), 대만의 약진을 비교하는 분석이다. 결론은 나와 있다. 한국이 일본을 앞지르기 전에 대만이 한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2022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4994달러로 대만(3만6051달러)에 1000달러 이상 뒤처지는 것으로 예상됐다. 2003년 이후 19년 만의 역전이다. 일본(3만9243달러)과의 격차도 3000달러로 좁혀진다. 대만 경제연구소들은 대만의 1인당 소득이 지난해 이미 한국을 넘어섰으며, 2027년께는 일본마저 제칠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실제 ‘값싼 일본’과 ‘나쁜 엔저(엔화 가치 하락)’가 동전의 양면처럼 보도되는 일본의 추락은 심각하다. 엔저가 지금 수준으로 이어진다면 올해 일본의 1인당 GDP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방아쇠 역할을 했지만 ‘엔화=안전자산’이라는 공식을 떠받쳐온 경상수지 흑자가 42년 만인 올해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허약해졌다.
한국도 일본의 침체를 즐길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1분기 GDP는 전기 대비 0.7%(전년 동기 대비 3.1%) 성장했지만, 수출만 증가했을 뿐 소비와 투자는 마이너스 성장에 그쳤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대 이상의 양호한 성장세를 기록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담하다. 줄곧 마이너스를 헤매던 문재인 정부의 5년 경제성적표가 막바지에 반짝 플러스로 돌아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반면 대만 경제는 자신감에 차 있다. 지난달 대만의 산업생산은 전년 대비 2% 이상 증가하며 26개월 연속 성장세를 이어갔다. 올해 1분기 성장률도 전년 동기 대비 4%에 육박할 정도로 견고하다. 지난해 성장률도 6.28%로 11년 만에 가장 높았고, 2020년에도 3.11%를 기록했다. 물론 절대 국부(國富)의 규모에서는 한국과 대만 모두 일본에 한참 못 미친다. 평균 임금에서도 ‘간극’이 여전하다.
하지만 숫자로 나타나는 거시지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동성이다. 일본 경제가 구조적으로 쇠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대조적으로 대만발(發) 경제뉴스는 내셔널리즘을 우려할 정도로 낙관적이다. 두 자릿수 임금 인상에도 일자리가 부족하고, 외식비 지출은 역대 최고 수준일 정도로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는 보도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서 있을까. 대체로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압축적으로 따라가고 있다는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우세하다. 일본보다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 잠재성장률 하락, 위험 수준에 도달한 국가부채 등 20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일본 국력의 쇠퇴 과정을 그대로 쫓아가고 있다는 경고다.
더 큰 위험은 일본이라는 반면교사가 있음에도 잘못된 방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2016년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국에 대해서 “성장률 둔화보다 한국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적 실패로 사회적 합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어떤 개혁 과제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을 포함, 그동안 한국은 미래 산업을 위한 인프라 투자나 노동·연금개혁 등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어떠한 성과도 이뤄내지 못했다. 재정을 뿌리는 단기 처방에 급급했을 뿐이다.
이제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열흘 뒤면 시작된다. 더 머뭇거리다간 한국 특유의 역동성을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놓칠 것이다. 대만에 추월당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됐다. 하지만 일본의 실패를 뻔히 지켜보면서도 그대로 따라갔다는 조롱까지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