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의 국정 의사결정 철학은 크게 두 갈래로 보인다. 구조적으로는 대통령실 ‘민관합동위원회’, 즉 책임 총리·책임 장관의 수평적 의사결정이며, 기능적으로는 과학적 사고 기반의 의사결정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정치적 목적과 이념에 치우친 의사결정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국정 의사결정’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이는 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 국내 과학기술인이 바라는 것으로 나타난 ‘과학과 정치의 분리’,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맥을 같이한다.
과학기술은 기후변화, 감염병 등 인류 난제 및 위기 극복의 해법이며, 국가 과학기술 수준은 글로벌 리더십과 직결된다. 또한 과학기술은 경제, 산업, 사회, 보건, 복지, 환경, 노동, 공공정책 등 국정 전반에 걸친 의사결정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과학기술을 국정의 우선 가치로 삼고 과학적 사고 기반의 정치적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새 정부의 철학은 시대적 요구에 부합한다.
과학적 사고 기반의 의사결정이란 무엇인가. 과학지식과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기본으로, 과학과 기술의 사회적 가치 및 한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내리는 과학적 판단을 말한다. 하지만 ‘과학기술 만능’과는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가치와 수용성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융합적 사고와 연결된다.
우리는 최근 몇 년 사이 ‘타다’나 ‘로톡’ 사태와 같이 혁신 스타트업과 특정 업계의 이익이 충돌하고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경험했다. 신산업과 전통산업 간의 갈등은 혁신적인 기술이나 사업 모델을 내세우는 신산업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더욱 다양해지고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속 가능한 혁신성장을 위해서는 혁신 산업과 기득권 산업이 조화와 균형의 과정을 거치며 기득권 저항을 포용·극복하고 사회적 갈등 유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적·사회적 역량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신기술과 신산업의 사회 안착을 위해선 과학기술 그 자체를 넘어 과학기술이 사람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생각할 줄 아는 융합적 사고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새 정부의 ‘과학적 국정 운영’은 융합적 사고 기반의 국정 의사결정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융합적 사고란 디시플린(discipline) 사이의 경계, 시공간적 경계, 전통적 사고 및 제도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창의력, 상상력, 공감과 소통의 내적 역량을 말한다. 이는 과학기술·인문사회·문화예술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으로부터 나온다.
융합적 사고 기반 의사결정을 통한 ‘과학적 국정 운영’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우리 사회에 융합 문화가 확산하고 융합 역량이 확충돼야 한다. 나와 다른 관점과 사고방식을 존중하고 익숙함과 당연함을 부정할 수 있는 용기와 창의성의 문화다. 국가 정책으로 인한 구성원 간 이해 갈등을 사회적 이익으로 귀결시키는 사회적 역량이다. 융합 교육과 융합 인재 양성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인문학적 통찰력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사회와 법 제도의 가치를 존중하는 과학기술 인재, 과학기술의 가치와 한계를 이해하고 과학기술에 인문학적·예술적 영감과 사회적 가치를 불어넣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문사회·문화예술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 현장은 아직 융합 인재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문·이과로 나뉜 고교 교육의 골이 여전히 깊은 가운데 대입제도와 평가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융합 교육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학 교육도 인문사회계와 이공계 사이의 칸막이를 과감히 없애지 못한 채 불완전하고 시범적인 형태의 융합 교육을 시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 교육부의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교육 현실이 문·이과 출신 사이의 판이하고 섞이기 힘든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사회 진출의 격차를 낳아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사회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과학적 국정 운영’이 국민 속에 튼튼히 뿌리내리려면 우리 사회의 융합 문화와 융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융합적 사고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정치, 경제 등 국정 전반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우리 사회가 융합 교육과 융합 인재 양성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