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석유제품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연료(경유, 휘발유)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경유 마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높은 수준이고, 경유의 대체재로 꼽히는 천연가스 몸값은 올 겨울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이날 기준 4월 평균 경유 마진(경유 가격-원유 가격)은 배럴당 44.64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완화되며 이동수요는 회복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산 수입 물량이 많은 유럽 내 경유가 부족해지면서 국제 경유 가격이 치솟고 있다. 지난해 기준 유럽연합(EU)의 러시아산 경유 수입량은 전체 수입량의 55%에 달한다. 2019년 기준 유럽 전체 차량 중 디젤 차량은 40%다.
디젤 마진은 통상 배럴당 5~10달러 초반 사이를 오간다. 지난해 4월 평균은 5.95달러였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2월 18.41달러로 오르더니 3월 30.81달러에 이어 4월에는 40달러선을 돌파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가장 높았던 수치는 39.13달러였다. 지난달 22일 스위스 석유중개업체인 비톨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는 “모두가 우려하는 석유제품은 경유”라며 “최악의 경우 유럽이 연료 배급제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디젤 순수입국인 유럽은 러시아가 아닌 미국, 중동, 아시아 등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세계 석유제품 재고량은 14년 만 최저치 수준이다. 지난해 말 이후 미국의 원유 생산량 증가분은 거의 없다. 게다가 미국이 고유가를 잡기 위해 5월부터 6개월간 하루 100만 배럴씩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기로 결정하면서 오히려 재고는 더 낮아질 전망이다.
여기에 중국 티팟(소규모 정유사)들의 가동률은 50%대로 낮춰졌다. 중국 정부가 내수용 물량이 부족해질 것을 우려해 수출을 막아놨을 뿐아니라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원유 수입 쿼터 자체를 줄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럽에선 러시아산 물량을 수입하는 것이 금기시될 것”이라며 “이번 전쟁이 에너지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도 나비효과가 뻗치는 중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 주유소 경유 평균 가격은 전월 대비 290.3원 오른 L당 1826.9원이었다.
EU가 러시아산 석탄 수입을 금지하면서 대체재인 천연가스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JKM LNG 선물(5월물) 가격은 지난 22일 100만BTU(열량단위)당 25.5달러를 기록했다. JKM은 글로벌 양대 LNG 수입국인 한국과 일본 시장에서 거래되는 LNG 가격지표다. 이미 계절적 비수기로 접어들었으면서도 1년 전(8.9달러) 대비 세 배 가량 높다. 업계에서는 동절기로 갈수록 LNG 시황 ‘초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이미 미국산 LNG 물량의 30% 정도가 유럽으로 향했는데, 현재는 60%가량으로 늘어났다”며 “유럽 수요로 당분간 LNG 수출 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남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