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26일 발표한 ‘미디어 분야 규제 혁신 및 성장 지원 방안’은 규제 일변도의 기존 미디어 정책을 성장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야심 찬 목표가 담겼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새로운 방송 플랫폼이 물밀듯 들어오는 현실에서 고사당하고 있는 미디어업계를 되살리겠다는 명분도 깔렸다. 하지만 구체적인 세부 실행 방안을 들여다보면 기득권을 가진 소수 방송 사업자에 혜택을 몰아주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게 미디어 전문가들 지적이다. 방송 미디어시장의 파이를 키우려면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하고 퇴출하는 공정 경쟁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인수위의 방안은 이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소유 규제 완화 초읽기
가장 큰 논란이 되는 부분은 방송법 8조에 규정된 ‘방송사 소유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안이다. 이런 규제는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공영 방송사와 경쟁하고 있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게 인수위 측 문제의식이다. 이날 방안을 직접 발표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간사)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은 지상파방송사 지분의 10%, 종편·보도채널 지분의 30%로 소유가 제한돼 있고, 외국인은 지상파방송사 투자가 아예 금지”라며 “지상파와 유료방송 간 겸영까지 제한돼 투자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규제 완화로 혜택을 보는 대상은 소수다. 당장 대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방송사들은 자산총액 규제 완화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 SBS를 지배하는 태영그룹은 2020년 말 기준으로 자산 규모가 9조8000억원이다. 2021년 기준 자산총액이 10조원을 초과해 다음달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이 예상된다. 이 경우 태영그룹은 현행 SBS 소유 지분(36.9%)을 10% 아래로 낮춰야 한다. KBC광주방송 대주주인 호반건설과 UBC울산방송 대주주인 삼라마이더스그룹도 자산총액 10조원 기준에 근접해 규제 완화를 기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청자를 대변하는 시민단체들은 결국 규제 완화를 통해 일부 대기업에 혜택을 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했다. 종편 불편한 재승인 절차 없애주나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한 신문사들도 수혜가 예상된다. 방송법 8조3항에 따르면 일간신문은 종편 주식의 30%를 초과 소유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의 TV조선 지분은 22%, 동아일보의 채널A 지분은 29.32%에 그친다.
이런 규제는 특정 신문사의 논조가 방송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도입됐다. 대기업 지분 규제가 완화되면 신문사가 대기업에 출자를 강요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종편 사업자들은 재승인 규제 완화도 기대한다. 종편 등 일부 채널사용사업자(PP)들은 방송법에 따라 3~5년의 승인 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재승인을 받고 있다. 이런 재승인 기간을 연장하고 절차를 간소화해달라는 건 종편 사업자들이 지속적으로 정부에 요구해온 사항이다. 실제 학계에선 재승인 심사가 사업자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종편이 누리는 기득권을 그대로 두고 규제만 완화한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정부는 2010년 종편 사업자 네 곳을 승인한 뒤 12년 동안 신규 사업자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미디어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적인 이유로 종편의 편의를 봐주고 숙원을 해결해준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방송의 다양성이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보다 기존 사업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쪽으로 간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많은 미디어가 병존하는 다채널 시대에선 지상파나 종편 TV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며 “방송 산업을 키우려면 허가제보다 등록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종편 재승인 기간과 대기업 소유 지분율 규제는 방송법 시행령에 규정된 사안이다. 민주당은 이런 규제 완화에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종편 재승인 기간을 5년으로 고정하면 자칫 정권 초반마다 재승인을 해줄 수 있다”며 “정권 입맛에 맞는 자기편만 재승인해주겠다는 얘기로 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가 야당과 상의 없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시도할 경우 시행령 규정 사항을 법률 조항으로 상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좌동욱/오형주/김희경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