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 자동차 부품업체 유라코퍼레이션 중국 내 공장 일곱 개 중 두 개가 있는 이곳은 한 달 넘게 봉쇄가 지속됐다. 최근 들어 이동 제한이 다소 풀렸다지만 정상 조업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을 실은 컨테이너가 웨이하이항 앞바다에 정박해 있는 선박에 5일째 발이 묶인 탓이다. 선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게 빌미가 됐다. 중국의 경제 중심지 상하이에 이어 수도 베이징까지 봉쇄가 확대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현장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유라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컨테이너가 공장에 도착하더라도 별도 창고에서 열흘간 추가로 격리돼 있어야 해 당장 쓸 수가 없다”며 발을 굴렀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밀어붙이는 중국 정부의 완강한 태도 탓에 봉쇄 지역이 베이징까지 확대되면서 한국 제조업 전반에 중국발(發) 부품 수급 ‘경고등’이 들어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부품·소재 수입의 29.3%, 중간재 수입의 27.3%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대중(對中) 수입액이 179억3000만달러(약 22조4017억원)에 이르는 반도체 분야(대중 수입의존도 39.5%)를 비롯해 배터리(93.3%), 의약품·의약원료품(52.7%), 희토류(52.4%) 등 국내 주력 산업의 중국산 소재·부품 의존도가 높아 우려가 크다. 중국에서 단 한 종류의 부품·소재 공급만 차질을 빚더라도 국내 생산 라인이 멈춰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품대란 쓰나미’가 먼저 덮친 곳은 자동차산업이다. 그간 중국에서 공급하던 ‘에어백 컨트롤 유닛(ACU)’ 부품 공급이 끊기면서 지난 18일부터 나흘간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캐스퍼 생산라인이 멈춰선 데 이어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핵심 부품 와이어링하네스 조달난으로 연쇄 감산이 현실화했다. K8, 모하비, 쏘렌토, 레이, 스포티지는 물론 팰리세이드, 아반떼, 포터 등 주요 차종이 한때 줄줄이 감산됐다.
수백~수천 개의 부품을 조립해 완성해야 하는 가전업계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주요 중견·중소 업체의 부품 재고가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산둥성 칭다오시에 있는 한국 중견기업의 중국 법인장은 “분기, 월 단위는커녕 2~3일 단위로 경영계획을 쪼개서 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다”며 “내일 당장 공장을 멈춰 세워도 이상하지 않다”고 우려했다.
디스플레이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완성 제품의 불량률도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디퓨저(특수 용액을 균일하게 뿌리는 부품)는 6개월 단위로 한국으로 보낸 뒤 세정 작업을 해야 하는데 상하이항이 막히면서 세정 작업이 미뤄진 영향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본사와 중국법인이 중국 현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 제조업체들이 발을 구르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큰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와 상하이시는 18일 당국이 요구하는 방역 기준을 맞추면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기업 666개를 담은 이른바 ‘화이트리스트’를 발표했다. 자동차와 의약, 반도체 기업이 주로 포함됐다. 하지만 이 기업들이 실제로 생산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직원 수가 워낙 적은 데다 물류가 마비돼 별다른 효과는 없는 상황이다. 22일 기준 실제로 조업을 재개한 화이트리스트 기업은 대상의 70%에 그쳤으며, 그나마도 가동률은 50%를 크게 밑돌았다.
언제 봉쇄가 풀릴지 불확실한 점도 기업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14일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으면 주민들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다시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면 또다시 봉쇄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문인 상하이항이 여전히 기능 마비 상태인 점도 고민이다. 해운정보업체 윈드워드에 따르면 19일 기준 중국 상하이항을 비롯한 중국 내 항만 부두에 접안을 기다리는 선박은 506척에 달한다. 봉쇄 전인 2월(260척)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항구까지 제품을 나를 운송 수단도 턱없이 부족하다. 19일 현재 상하이를 통과하는 하루 트럭 물동량은 봉쇄 전보다 79.5%나 급감했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중국발 부품대란이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부품 공급망 재편을 위해 중국에 진출했던 기업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한 획기적인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근/김진원/정지은 기자/베이징=강현우 특파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