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25일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과 관련된 여야 합의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 합의서에 서명한 지 사흘 만이다. 국민의힘 내부와 강성 지지층 반발에 검수완박 관련 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4일 자신의 SNS에서 “(검수완박 중재안이) 의원총회를 통과했다고 하지만 심각한 모순점들이 있는 상황에서 입법 추진은 무리”라며 “최고위 회의에서 협상안에 대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입법 공청회를 해야 한다”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통해 해당 정책 사안에 대해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의 이 같은 입장은 민주당과의 합의안과 법안 처리 절차를 뒤집겠다는 의도로 해석돼 주목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사견임을 전제로 “정치인들이 스스로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상충”이라며 “많은 국민, 지식인이 그래서 분노하고 계신 것”이라고 말했다. 중재안에서 국회의원이 저지르는 선거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기로 한 것을 지적했다. 그는 “사법체계의 가장 중요한 근간에 대한 부분인 만큼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검수완박) 법이 통과되면 범죄자들에게 숨 쉴 틈을 줘 국민들이 피해를 볼까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검찰총장 시절 ‘검수완박은 부패완박’이라고 일갈했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직접적인 입장 표명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에 대한 윤 당선인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윤 당선인은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잘 지켜보고 있다”며 “취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취임 이후에 헌법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책임과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과 인수위에서 동시에 비판이 제기되면서 민주당과 합의를 주도한 권 원내대표는 궁지에 몰렸다. 두 시간 사이에 두 차례 페이스북 글을 올려 기대에 못 미친 결과에 사과하는 한편 그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권 원내대표는 “실망하신 국민과 당원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의석수가 부족해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검수완박 원안을 통과시키면 차악도 아닌 최악의 악법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며 “가장 중요한 부패와 경제 범죄 수사권을 사수하고, 경찰 견제를 위한 최후의 수단인 보완수사권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권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협상에 나서며 당 지도부는 물론 윤 당선인과도 관련 내용을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원래 여의도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 당선인 생각이라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28일이나 29일 임시국회를 열어 검수완박 입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만큼 국민의힘 최고위에서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의총 결정안을 당 지도부가 뒤집은 사례는 여야를 통틀어 드물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당 대표도 출석 권한이 있는 만큼 불만이 있으면 22일 의총에 나와 말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의 리더십이 상처를 입게 된 것은 물론 당분간 당내 분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반대 여론이 높은 가운데 윤 당선인,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안을 밀어붙인 데 대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발이 크다”며 “예정대로 이번주 관련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경목/좌동욱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