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회사.’ 2019년 국내 1세대 바이오기업인 헬릭스미스를 일각에선 이렇게 불렀다. 당뇨병성 신경병증 치료제 후보물질인 엔젠시스(VM202)가 상용화 직전 단계에서 미끄러지며 목표로 삼았던 2020년 첫 신약 출시 계획이 물거품이 됐다. 엔젠시스는 2년 만에 다시 시판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에 선다. 성공하면 국내 첫 블록버스터 신약의 역사를 쓸 것이란 평가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사진)는 최근 서울 마곡 본사에서 기자를 만나 “엔젠시스 3-2상 시험 중간 결과가 7월께 나오면 신약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탓에 다소 지연된 임상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곧 미국을 찾을 계획이다. 허가를 위한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겠다는 의미다.
엔젠시스는 원형 고리 모양인 플라스미드DNA를 활용해 간세포성장인자(HGF) 생성 유전자를 주입하는 치료제다. 신경통을 앓는 당뇨병 환자에게 주사해 통증을 줄여주는 원리다. 먹는 약을 대체할 수 있는 데다 통증 감소 효과가 8개월까지 지속돼 혁신 신약 후보군으로 꼽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첨단재생의약치료제(RMAT)로 지정해 심사 절차를 줄여준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 분석기관들이 평가한 시장 가치는 7조~16조원이다. 김 대표는 “당뇨병 환자가 계속 늘어 시장 가치가 커지고 있다”며 “독점적 특허권도 2039년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고 했다.
엔젠시스의 미국 3-2상 목표 환자는 152명이다. 임상 대상군의 70% 이상을 채웠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최종 결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7월엔 미국 독립적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iDMC)가 중간 결과를 공개한다. ‘중단’ 결정이 나오지 않으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때가 되면 다국적 제약사와의 기술수출 논의도 속도를 낼 것이란 평가다. 그는 “지금도 기술이전 등의 논의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최소한 중간 데이터는 나와야 제값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자금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겠다는 취지다.
헬릭스미스는 올해 항체치료제 자회사 시그널링스(가칭), 허혈성질환 치료제 자회사 안지옥스(가칭)를 분사한다. 키메라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카텍셀에 이어 자회사는 세 곳으로 늘어난다. 이곳에서 만든 첫 CAR-T세포 치료제 후보물질 임상시험은 2024년 상반기 시작된다. 2025년엔 4~6개 신약이 임상시험에 진입한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