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업계가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 데다 ‘제 살 깎기’식 가격 경쟁으로 레드오션이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동나비엔은 미국 수출 호조에 힘입어 해외 매출 비중이 최초로 60%를 돌파했다고 24일 밝혔다. 경동나비엔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7075억원으로 전체 매출(1조1029억원)의 64.1%를 기록했다. 북미 지역 매출은 5819억원으로 전년 대비 48.4% 늘었다. 국내 매출(2021년 3954억원)의 1.5배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리모델링 수요가 커지면서 해외 각국에서 보일러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덕이다. 특히 현지 1위 업체로 주문이 몰리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경동나비엔은 콘덴싱보일러·온수기 분야 미국 시장 1위 업체다.
국내 보일러 시장은 제대로 이익을 남기기 어려운 구조다. 아파트 건설사에 대량으로 공급되는 물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납품되는 탓이다. 국내 시장 성장도 한계에 달했다는 평이 많다. 인구 증가세가 둔화하고 제품 품질 향상으로 교체 수요가 많지 않아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가정용 친환경보일러 보급 사업의 경동나비엔 판매 대수는 지난해 11만3600대로 전년보다 38%(3만8000대) 줄었다. 정부 지원 예산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업계 전체 하락폭(23%)보다 컸다.
반면 미국에선 제값을 주고 팔 수 있기에 미국 시장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불린다. 경동나비엔의 지난해 북미법인 순이익은 전년 대비 105.3% 늘어난 117억원을 기록했다.
귀뚜라미와 대성쎌틱에너시스도 미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위탁개발생산(ODM)을 통해 현지 시장을 뚫은 귀뚜라미는 올해 신규 사업을 개척하고 신제품 공급을 늘릴 계획이다. 대성쎌틱은 ‘베스타’라는 독자 브랜드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도 토종 보일러 3사(경동·귀뚜라미·대성)가 격돌하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러시아에선 콘덴싱보일러·온수기 시장 점유율 1위로서 ‘국민 보일러’로 인정받고 있다. 보일러는 전략 물자가 아니라 생필품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수출 타격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기름보일러 시장은 귀뚜라미가 1위다. 귀뚜라미는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을 비롯해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 등 남미 국가에도 기름·가스보일러를 수출하고 있다.
보일러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삼는 시장은 중국이다. 경동나비엔, 귀뚜라미, 대성쎌틱 모두 현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당장은 큰 수익이 나지 않지만 가스보일러 보급이 확산되면서 매출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