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일으킬 '사람' 없다…4년간 마을 164개 소멸

입력 2022-04-22 17:30
수정 2022-05-02 16:44

지난달 말 방문한 오이타현 나카츠에무라 미야하라 부락의 첫인상은 일본의 여느 농촌 마을과 다를 게 없었다. 산모퉁이의 작은 마을이지만 아스팔트 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어 접근성은 나쁘지 않았다. 미야하라가 특별한 점은 인구가 단 한 명인 마을이라는 것이다.

10여 년 전 아랫집 주민이 고령으로 세상을 뜬 이후 올해 87세인 니시 야스코가 이 마을의 유일한 주민이다. 한 달에 1~2회 병원 정기검진과 2주치 식료품 구입을 겸해 읍내에 갈 때를 제외하면 줄곧 마을에서 홀로 지낸다. 한류 드라마를 시청하는 낙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텅 빈 마을 공터까지 산책을 나간다. 그는 “아랫마을 큰 도로까지 나가봐야 빈집뿐이라 만날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니시가 세상을 뜨면 미야하라 마을은 사라진다. 인구 유지 포기하는 지자체 속출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2015~2019년 4년 동안에만 주민이 0명이 되면서 소멸한 마을이 일본 전역에 164곳이다. 가까운 장래에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마을은 3622곳에 달한다.

지금까지 일본 기초자치단체들은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이주정착금 출산축하금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내걸고 이주자 유치에 안간힘을 썼다. 최근 들어 인구 유지 정책을 포기하는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주변 지역과 주민을 뺏고 뺏기는 인구 쟁탈전을 벌였을 뿐, 대도시의 젊은 세대가 유입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구는 늘지 않고 재정만 파탄 났다.

2017년 아이치현 신시로시 시장 선거에서는 “인구 감소에 맞춰 공공시설을 줄이고 인구 쟁탈전에 투입하던 예산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쓰겠다”고 주장한 호즈미 료지 후보가 당선됐다. 신시로시의 인구는 10년 새 10% 이상 줄었다. 대도시권인 아이치현에서 유일하게 ‘소멸 가능성이 있는 도시’에 지정됐다. 호즈미 시장은 20개에 달하던 초등학교를 13개로 통합하는 등 인구 구조 변화에 맞게 신시로시를 개조했다.

미야하라 마을이 속한 나카츠에무라에서도 ‘마을을 품위 있게 사라지게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1972년 이 지역의 유일한 산업이던 금광이 폐쇄된 뒤 7000명이 넘던 나카츠에무라 인구는 600여 명으로 줄었다. 이곳은 각종 지원금 제도로 이주민을 유치하려다 재정이 크게 악화된 경험이 있다. 인구 쟁탈 소모전을 벌이느니 장례식장 유치, 사망 수속 교육 등을 하는 게 낫다고 하는 주민이 많은 이유다. 2025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나라일본에서 인구 감소는 ‘잃어버린 30년’ 장기 침체에서 벗어날지와 직결되는 경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인구는 장기 디플레이션의 유일한 탈출구인 소비 증가를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10여 년에 걸친 무제한 재정확장·금융완화 정책이 먹히지 않은 것도 “인구 감소가 정책의 허리를 잘랐기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2017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인구 감소를 “북한 문제와 함께 일본의 2대 국난”으로 지정했다. 2000년대 들어 인구 감소는 일본의 잠재성장률을 0.3%포인트 끌어내리고 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인구 감소로 인해 2040년께 일본의 잠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5년이면 800만 명에 달하는 전후 베이비붐세대(단카이세대) 전원이 75세 이상 고령자가 된다. 후생노동성은 작년 7월 “2025년까지 간병 인력을 32만 명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발표했다. 2040년이면 부족한 간병 인력은 69만 명으로 늘어난다. 간병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일본에선 연간 10만 명이 노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 후생노동성은 이로 인한 연간 경제적 손실을 6500억엔(약 6조2923억원)으로 추산했다.

경제산업성은 2030년 일본의 정보기술(IT) 인재가 최대 79만 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IT 인재 확보는 일본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과제다. 하지만 부족한 노동력은 저임금 업종인 간병 인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1970년 처음 1억 명을 넘어선 일본 인구는 80년 만인 2050년이면 9000만 명에 턱걸이할 전망이다. 인구 1억 명 사수는 일본의 명운이 걸린 문제로 평가된다. 일본의 모든 사회·경제적 구조가 인구 1억 명 이상의 시장을 전제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출생률이 2.07명 이상이어야 인구 1억 명 유지가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2020년 일본의 출생률은 1.34명으로 5년 연속 하락했다.

오이타=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