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자동 생산기계가 세상에 나온 건 1881년 미국에서다. 사람이 분당 4개비 만들던 걸 분당 200개비, 1시간에 1만2000개비나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노스캐롤라이나의 ‘담배 왕’ 제임스 듀크는 큰 소리로 “지도를 가져와. 여기가 담배를 팔아야 할 곳이다!”라고 소리쳤다.
그가 가리킨 곳은 중국이었다. ‘인구 4.3억명’이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당시 미국 인구 5019만 명보다 여덟 배 많은 수치였다.
1890년 중국에 진출한 듀크의 회사는 엄청난 광고 공세로 현지 시장을 파고들었다. 1902년엔 영국 담배 회사와 합작해 이름을 ‘브리티시-아메리칸 담배회사(BAT·British American Tabacco)’로 바꿨다. 지금도 글로벌 담배시장의 최강자 중 하나로 꼽히는 바로 그 회사다. 1902년 12억5000만 개비였던 중국 판매량은 1912년 97억5000만 개비, 1916년엔 120억 개비로 늘었다. 날로 번창하던 BAT의 중국 사업은 1941년 일본에 의해 자산을 압류당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중국 시장에서 축출되면서 막을 내렸다.
《중국과 미국, 무역과 외교 전쟁의 역사》는 미국이 거대 소비 시장인 중국에 관심을 가진 게 오래전부터였다는 걸 보여준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미·중의 경제 교류가 본격화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 역사는 그보다 200여 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델라웨어대 역사학과 교수로, 중국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생 출신이다. 《중화제국 재건: 만주-한국 관계, 1616-1911》 등의 책을 쓴 그는 이번엔 1784~1911년 신생 독립국 미국과 국력이 쇠해져 가던 청나라 사이의 접촉을 생생하게 그렸다.
미국은 1783년 독립했다. 전쟁 끝에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승인한 파리 조약을 맺은 해다. 하지만 영국은 곧바로 미국에 경제 봉쇄령을 내렸고, 미국 상인들은 서인도 제도를 통과할 수 없었다.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고자 상인들은 저 멀리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이듬해 ‘중국황후호(the Empress of China)’라는 이름을 단 범선이 뉴욕항을 떠나 중국 광저우로 향했다. 배에는 면화와 납, 후추, 가죽 제품, 미국 인삼 등이 실렸다. 이미 유럽 상선들이 광저우를 활발하게 드나들던 때였다. 중국황후호는 이 물건들을 순식간에 다 팔고 홍차, 녹차, 면포, 자기, 계피 등을 구입해 돌아왔다.
미국 연방정부는 각종 보고서에서 중국과의 무역이 가져다줄 엄청난 이익을 언급했다. 신생 국가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1789년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은 중국과의 무역을 강조해 2년 동안 중국 화물에 저렴한 관세를 부과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1814년에 이르자 미국과 중국을 오가는 선박이 연간 618척으로 늘었다.
한동안 우호적인 관계가 이어졌다. 미국은 중국을 동등한 무역·외교 파트너로 여겼고, 중국 역시 신생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을 신뢰했다. 하지만 중국의 국력이 약해지고, 서구 열강의 식민지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책은 근대 식민주의와 대비해 중국 중심의 종주국 체제가 더 평화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조공을 받는 대신 주변국을 지배하거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시기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드물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 청나라가 폐쇄적이었다는 것도 서구의 시각일 뿐 주변국인 조선, 베트남, 시암(태국), 류큐(오키나와), 러시아 등과는 활발히 교류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런 종주국 체제를 적극적으로 전복하려고 한 나라가 일본이었다고 분석한다. 중국과의 종주국 관계에서 벗어나 있던 일본이 청·일 전쟁을 일으키고, 류큐와 조선을 병합하면서 청나라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들고, 식민지와 거리를 두던 미국도 필리핀, 괌 등을 점령하며 사실상 영토 경쟁에 뛰어들었다.
책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진 1911년에서 끝나지만, 미국과 중국의 세계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경제적 이윤을 항상 최우선에 뒀고, 중국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중·미 관계가 역사적 고비에 서 있는 건 분명하지만 결코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갈등과 화해를 반복해온 양국의 역사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