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여러 시국 사범을 변호하며 ‘1세대 인권변호사’로 불린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지난 20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1934년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나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8회)에 합격했다. 법무관을 지낸 뒤 1960년 법무부·서울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1965년 변호사로 개업해 분지 필화사건(1965년)을 시작으로 동백림 사건(1967년), 통일혁명당 사건(1968년), 민청학련 사건(1974년) 등 여러 시국사건의 변호를 맡아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했다. 고인은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내란음모 사건 당시 공범으로 몰려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6년 홍성우·조영래 변호사 등과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다. 정법회는 1988년 출범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전신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 때인 1998∼1999년 감사원장을 지낸 뒤 노무현 정부 때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대리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에는 선거 캠프 통합정부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과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관훈클럽 고문변호사 등도 역임했다. 《피고인이 된 변호사》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등 저서도 다수 남겼다. 고인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헌신하고 사법개혁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빈소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졌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