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유니콘 선점" KAIST·서울대, 창업 전쟁

입력 2022-04-20 17:13
수정 2022-04-21 11:03
“이 프로그램을 썼더니 왜 이리 학생들이 질문을 쏟아내냐? 300개째네. 채린아. 이거 사업 되겠는데?”

이채린 클라썸 공동대표는 KAIST 전산학부 2학년에 다니던 중 학생과 교수들이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개발했다. 하지만 스스로 ‘망작’이라고 생각했고 사업화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를 스타트업 대표로 만든 것은 당시 은사인 김동준 교수의 한마디였다. 김 교수가 이 프로그램을 강의에 도입해 사업성을 검증해줬고, 도전하라고 힘을 북돋워준 것이다.

이 대표는 “대학이 주는 창업 지원금이 얼마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중요한 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인가, 몰입의 방향성을 점검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말했다. 대학가 창업 불붙었다 청년 창업이 급증하면서 대학이 유망 스타트업의 육성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대학마다 입주기업 경진대회를 열어 될성부른 창업기업을 선발한다. 예비 유니콘 기업을 선점하기 위한 대학가 경쟁도 치열하다. 최근 선두에 있는 곳은 KAIST와 서울대다.

KAIST 창업원은 2014년 이후 113건의 학생 창업과 35건의 교원 창업을 지원했다. 창업원 내 ‘스타트업 빌리지’엔 기숙사와 사무공간이 함께 있다. 자퇴 학생은 물론 다른 학교에 다니는 팀원에게도 열려 있다. 이 대표는 “사무실에서 밤새 코딩하다가 새벽이면 기숙사로 걸어갔다”며 “2년여간 창업에 몰입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으로 완벽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부터 클라썸 서비스는 KAIST의 모든 수업에서 사용된다. 클라썸에서 줌 화상강의를 들으면서 토론, 질문, 답글을 올릴 수 있다. 클라썸은 미국 스톰벤처스 등으로부터 74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예비 유니콘 기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학들, 각종 혜택으로 선점 경쟁생산 자동화 로봇 스타트업인 에니아이의 황건필 대표는 KAIST 박사 출신으로 서울대 캠퍼스타운에 입주한 경우다. 황 대표는 “서울이라는 입지적인 이유가 컸다”고 설명했다.

2020년 9월 입주 초기 에니아이에 주어진 보육 공간은 3개 좌석에 불과했다. 이후 6개월마다 진행된 평가에서 줄곧 1위를 차지하면서 올해 초 좌석은 12개로 늘어났다. 서울대 채용박람회를 통해 구인난 부담을 덜었다. 재무·법무·노무 컨설팅 역시 무상으로 받았다. 에니아이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로부터 시드(초기) 투자를 받았으며 오는 6월 투자유치 프리 A 라운드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대 캠퍼스타운은 2020년 설립 이후 62곳의 스타트업을 발굴했다. 이모코그, 한국시니어연구소, 펫나우, 라트바이오 등 유망 스타트업이 줄줄이 나왔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기술 스타트업을 선발한 게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VC도 예비 유니콘 기업에 눈독대학이 창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1999년 고려대가 중소기업청 지정 창업보육센터를 발족하면서다. 대학들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10년 전후다. 한양대가 이즈음부터 스타트업 육성을 주도하면서 주목받았다. 2009년 설립된 한양대 창업지원단은 학생, 동문, 교수,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금까지 582개 스타트업을 발굴 육성했다.

서울시가 대학, 자치구와 함께 진행하는 ‘서울 캠퍼스타운 사업’도 대학의 창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2017년부터 32개 캠퍼스타운에서 스타트업을 키웠다. 누적 창업 건수는 올해 1500건에 이를 전망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