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는 ‘공정’의 기준을 모르겠다.”
지난해 1월 몇몇 대기업에서 ‘성과급 불만’이 터져 나왔을 때 기업 임원들이 당황해하며 던진 말이다. HR 담당자뿐 아니라 마케팅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그들이 말하는 진정성이 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지난 2년간 한국 사회와 대기업을 뜨겁게 달군 화두,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얘기다.
정말 MZ세대는 완전히 새로운 세대일까? 40세 아저씨와 18세 여고생을 같은 세대로 묶는 ‘MZ세대’라는 단어의 개념적 결함을 떠나서, 좁게 이들을 1990년대생으로만 규정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들이 정말 독특하기 때문에 기성 조직과 충돌하고 지금까지의 마케팅이 먹히지 않는 것일까? 이들이 보여주는 ‘개인주의 성향’, ‘조직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요구 및 조직의 불합리성 개선 요구’, ‘워라밸 중시’ 등은 현재 40대인 X세대가 ‘신인류’라는 이름을 달고 처음 등장했을 때도 똑같이 화두가 된 것들이다. 다만 X세대가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생존’을 위해 포기했던 가치들이었고, 그런 가치들이 이제야 그다음 세대에 빛을 발하고 주목받으며 소비시장과 기업 내부를 뒤흔들기 시작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해 지난 2~3년간 조직을 당황하게 했던 ‘MZ세대와 기성 조직 문화의 충돌’은 ‘시대 갈등’에 가깝다.
‘대세’를 따르는 매스마케팅 전략이 불가능해진 것은 이들이 특별한 소비자라서가 아니다. 오랜 시간 기술 발달로 개인화한 마케팅이 가능한 시대가 됐고 기업 마케팅 활동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쉽게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대 불문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다. 조직 내 불필요한 회식을 거부하고 자기 계발과 취미활동을 중시하는 것도 이들이 별나서가 아니다. 수차례 경제위기와 고착화된 저성장 시대를 겪어 온 이들에게 ‘평생직장’, ‘가족 같은 회사’의 개념이 호소력을 잃었기 때문에 나타난 일이다. 조직 내 평가와 급여 체계의 공정성,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불공정성을 참을 수 있을 만큼의 파이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반영이다. 또한 이미 만들어진 지 20년이 다 돼가는 각종 구인구직 플랫폼과 블라인드 같은 기업 평가 앱을 통해 정보를 찾고 공유하며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했기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회사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세대 갈등’처럼 보이는 ‘시대 갈등’ 자체가 그 누군가의 책임은 아니다. 7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뒤 선진국까지 진입한 ‘초고속 압축성장’이 만든 부작용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은 세대가 고령화와 정년연장 속에 여전히 조직의 리더로 남아 있다. 그들에게 회사는 아직도 함께 야근하고 회식을 하며 팀워크를 다지고 헌신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조직이며, 한국은 그런 조직들이 모여 성장해야만 하는 개발도상국일 뿐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도 ‘선진국 벤치마킹’과 ‘해외 선진 기업 사례’가 보고서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1990년대 ‘자유와 풍요의 세례’를 받은 X세대, 현 40대는 몇 차례 경제위기를 겪었음에도 이상주의와 낙관론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단 한 번도 ‘고성장’이나 ‘풍부한 기회’를 체험해보지 못한 MZ세대, 특히 1990년대생들과 사고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MZ세대, 1990년대생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미 선진국이 된 나라에서 선진국의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고질적 문제와 글로벌 기후위기까지 겪고 있는 소비자이자 직원인 이들의 자연스러운 선택과 요청을 ‘세대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 진짜 문제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노력,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MZ세대는 이해하기 어렵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생각하기 전에 기업이나 조직의 리더일수록 ‘내가 시대 변화를 놓친 것은 아닌지, 내가 사는 시대와 세계가 그들과 다른 건 아닌지’부터 돌아보면 좋겠다. 본래 조직의 변화는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들의 관점 변화에서 시작되는 것 아니겠는가.
고승연 《Z세대는 그런 게 아니고》 저자,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