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에 ‘S(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급등) 공포’가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물가가 치솟으면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저성장·고물가 우려가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3개월 만에 세계 성장률 전망 0.9%p↓세계은행은 18일(현지시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3.2%로 수정했다. 지난 1월에 내놨던 전망치를 3개월 만에 0.9%포인트 내렸다.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률(5.7%)과 비교하면 2.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본 것이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포함된 유럽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전망이 하향 조정되면서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내려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발도상국 상황을 깊이 우려한다”며 “이들 국가는 갑작스러운 에너지, 비료, 식량 가격 상승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높은 물가 상승이 세계적으로 경제 성장을 잠식할 수 있으며 특히 개도국이 이런 충격파의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을 예고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 1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경제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며 세계 경제의 86%를 차지하는 143개 국가의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은행과 IMF가 잇달아 세계 경제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 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졌고 그 결과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크게 뛰었다. 게다가 중국 등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하고 있고, 추가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미국 등 주요 국가가 긴축재정 정책을 펴는 것도 경기 둔화의 요인으로 꼽힌다.◆한국도 2%대 성장 불가피한국 상황도 마찬가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7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전망(2.8%)보다 0.2%포인트 낮췄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4.0%로 2010년(6.8%) 후 11년 만에 가장 높았던 걸 감안하면 올해는 ‘추락’ 수준이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고물가,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 등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성장률 하향 조정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9%로 내다봤다. 지난해 10월 전망(1.6%)과 비교하면 2.3%포인트 높다. 지난해 물가 상승률은 2.5%였다.
다른 기관들도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3.1%에서 3.0%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3.0%에서 2.7%로 낮췄다. 주상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직무대행도 17일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4%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올해 성장률은 당초 전망인 3.0%를 밑돌아 2%대 중·후반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같은 상황은 오는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에도 부담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우리 경제의 복합 위기 징후가 뚜렷하다”며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저성장과 고물가를 동시에 잡을 정책 조합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더 악화하고 경기 회복을 위해 돈을 풀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윤 당선인이 코로나19 손실 보상을 위해 공약한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도 물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연초부터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며 “물가 안정을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