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성과보수펀드가 출시 5년 만에 시장에서 사라진다. 금융당국이 공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제도까지 손질해가며 도입한 펀드지만, 정작 투자자와 판매사의 외면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19일 트러스톤자산운용에 따르면 ‘트러스톤정정당당성과보수펀드’는 다음달 청산 절차를 밟는다. 2017년 6월 출시된 이 펀드는 국내 최초 성과보수펀드 중 하나였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같은날 성과보수펀드를 출시했던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달리 자기자본 50억원을 직접 투자하며 열의를 보였지만 투자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급기야 지난달 말부터 펀드에 투자했던 자기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 펀드의 운용설정액은 3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50억원 미만의 자투리펀드가 되자 청산을 결정한 것이다.
성과보수펀드는 금융당국의 공모펀드 활성화 정책 일환으로 나온 상품이다. 투자자는 펀드에서 손실이 나도 운용사가 운용수수료를 따박따박 떼어가는 것에 불만이 컸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운용수수료를 낮추는 대신 수익률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초과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 성과보수를 떼는 방식의 펀드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기존엔 5억원 이상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성과보수를 가져갔지만, 2017년 5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바꾸면서 모든 고객으로부터 성과보수 수수료를 걷을 수 있도록 했다.
금융당국이 제도까지 변경하면서 선보인 성과보수펀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판매사들부터 소극적이었다. 운용사가 성과보수를 따져 수수료를 매기려면 투자자 수익을 일일이 계산해야 한다. 판매사를 통해 개별 펀드 가입자가 언제, 얼마나 펀드에 투자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파악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사모펀드의 경우 투자자 수가 49명 이하로 정해져 있지만 공모펀드는 투자자 규모가 훨씬 크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은행들은 투자자 수익을 계산하는 시스템을 공동으로 개발했지만 증권사는 그렇지 않았다”며 “판매사 입장에서 펀드를 팔수록 귀찮은 일이 많아지다 보니 판매를 꺼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트러스톤정정당당성과보수펀드와 미래에셋배당과인컴30성과보수펀드의 판매사는 국민은행 한 곳에 불과하다. 삼성EMP글로벌로테이션성과보수펀드 역시 신한은행 한 곳에서만 판다.
투자자로부터도 외면받았다. 판매 초기부터 성과보수펀드 자체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높지 않았다. 성과보수펀드가 개별 투자보다 높은 수익을 안겨줄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끊이지 않았다. 공모펀드 자체에 대한 관심이 쪼그라든 영향도 컸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늘어난 데다 코로나19 이후 개별주식 성과가 워낙 좋다 보니 성과보수펀드에 눈을 돌리는 투자자가 많지 않았다.
성과보수펀드의 수익률도 저조한 편이었다. 트러스톤정정당당성과보수펀드는 최근 3년 수익률이 21.45%(A클래스 기준)로, 액티브 국내주식형 펀드 평균 수익률(26.81%)을 밑돈다. 미래에셋배당과인컴30성과보수펀드는 최근 3년 수익률이 6%대에 머물렀다. 삼성EMP글로벌로테이션성과보수펀드 역시 같은 기간 7%대의 수익률에 그쳤다.
현재 국내에 출시된 성과보수펀드는 총 10개다. 모두 ‘자투리펀드(50억원 미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업계에선 상당수 성과보수펀드가 청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