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의 챔피언 결정전은 치열하다.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두 세 게임의 단기전. 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이 만났을 때 도전자의 공세는 거세지기 마련이다. 지난주 막이 내린 여자프로농구(WKBL)에선 기존의 문법은 통하지 않았다.
‘압도적이다’는 말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 경기력. 24경기라는 역대 최소 경기 만에 정규리그를 제패한 청주 KB스타즈는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까지 거두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파격적인 감독 선임 등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KB스타즈는 시즌 내내 ‘절대 1강’의 실력으로 ‘KB 왕조’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구단 역사 최초 '트레블' 달성 KB스타즈 직전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안타깝게 고배를 마셨다. 아쉬움은 1년이면 족했다. 심상치 않은 모습이 감지된 것은 작년 7월. 신인 선수들을 주축으로 출전한 박신자컵 서머리그에서 부천 하나원큐를 상대로 우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시즌의 신호탄을 쏜 것.
10월부터 시작된 정규리그에서도 개막 후 9연승을 비롯해 팀 최다 연승 신기록(14연승)을 세우며 WKBL 역대 최소 경기(24경기)로 우승을 확정했다. KB스타즈의 거침없는 행진은 플레이오프에서도 계속되어 부산 BNK와의 플레이오프(3전2선승제)를 포함, 아산 우리은행과의 챔피언 결정전(5전3선승제)까지 5게임 모두 승리를 거두며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KB스타즈는 1963년 창단 이래 최초로 컵대회와 정규리그, 챔피언 결정전까지 석권하며 ‘트레블’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2O 전략' 앞세운 체질 개선이 성공 비결KB스타즈는 국보센터 박지수를 앞세운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이었다. 하지만, 티어원이 아닌 온니원이 되기 위한 구단의 선택은 환골탈태(換骨奪胎)였다. 솔개가 무딘 부리를 스스로 바위에 부딪혀 날카롭게 만들어 미래를 대비하듯 KB스타즈 역시 한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바꿨다.
KB스타즈의 성공비결은 기회(Opportunity) 와 개방(<i>Openness)</i>의 '2O 전략'을 앞세운 혁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혁신의 선봉에는 초짜 김완수 감독이 섰다. 김 감독은 취임 뒤 선수들이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데 몰두했다. 이름값이 아니라 실력이 선수 기용의 중심이 됐다. 나이나 경력보다는 현재의 폼이 중요해진 상황. 기회를 잡은 선수들은 코트를 헤집고 다녔다. 김민정·김소담·최희진과 같은 ‘씬스틸러’들이 주인공. 포워드 김민정은 박지수·강이슬과 함께 팀 공격을 이끌며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고 김소담, 최희진은 박지수·강이슬의 백업을 완벽히 수행하며 지난 시즌 KB스타즈의 약점으로 지적된 높은 주전 의존도를 해소했다.
백업들이 날아다니자 난처해진 것은 다른 팀들. 박지수, 강이슬이라는 ‘리그 최강’ 원투펀치를 집중적으로 견제하다 보면 백업들이 터지기 때문에 누구를 막아야 하는지 모르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부닥치곤 했다.
무명의 반란으로 시작된 'KB왕조'KB스타즈의 ‘트레블’ 우승을 논함에 있어 김완수 감독을 비롯해 신예 허예은, 엄서이 등 ‘무명들의 반란’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시즌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던 KB스타즈는 당시 부천 하나원큐 코치로 무명에 가까웠던 김완수 감독을 깜짝 선임했다. 이를 두고 ‘모험수를 뒀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김 감독은 실력으로 증명했다. 취임 후 김 감독은 ‘실력 우선주의’를 천명하고 주전 선수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려져 있던 백업 선수들에게도 적극적으로 기회를 부여하며 팀 내 건강한 경쟁 구도를 구축했다. 개방적인 분위기로 순혈주의를 타파한 것도 우승에 숨은 비결. 능력이 있는 인재는 출신과 상관없이 중용했다. 지난시즌 BNK와 하나원큐에서 뛰었던 엄서이, 강이슬이 우승의 주역으로 떠오른 이유다.
김 감독의 선수단 운영은 구단이 속한 KB금융그룹의 경영철학과 맞닿았다는 후문. 김 감독이 ‘실력 우선주의’ 아래 팀 내 모든 선수에게 고른 기회를 준 것과 같이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도 인재를 등용하는 데 철저히 능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 회장은 다른 금융그룹 출신의 디지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 직접 나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완수 감독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기존 주전 선수들 외에 유망주로 평가받던 선수들이 크게 성장하며 팀의 포지션별 밸런스를 한층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 포인트가드 허예은은 직전 시즌 대비 출전시간을 대폭 늘리며 게임을 조율하는 야전 사령관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고 신예 엄서이, 양지수 등은 위기 때마다 조커로 나서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KB스타즈의 ‘트레블’ 신화 달성에 이들 ‘무명의 반란’이 있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프로농구 2021-2022시즌을 ‘트레블’ 우승이라는 더할 나위없는 결과로 마무리했지만, KB스타즈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김완수 감독의 뛰어난 전략과 여전히 막강한 박지수·강이슬 듀오 및 팀의 중심 주장 염윤아, 그리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허예은, 엄서이 등 신예 선수들이 ‘ONE TEAM’으로 조화를 이루며 ‘절대 1강’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예정이다. 구단 최초 ‘트레블’ 우승에 이어 ‘KB왕조’가 앞으로 어떠한 신화를 더 써 내려갈지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다음 시즌이 궁금해진다
김순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