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강조한 새 정부마저…'年 17조 현금살포 공약' 밀어붙여

입력 2022-04-18 17:30
수정 2022-04-26 15:44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규모 재정이 소요되는 현금성 공약을 새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것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불가피한 정치적인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같은 논란이 큰 공약은 강행하면서 민생 경제는 외면한다는 여론을 의식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이런 현금 살포 공약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체질엔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새 정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포퓰리즘 정책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필요 예산 눈덩이처럼 늘 것” 18일 인수위에 따르면 △부모급여 신설 △기초연금 인상 △장병 월급 인상 등 3대 현금 지원공약이 새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되는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기획조정분과, 경제1분과 등은 공약 이행에 필요한 예산을 추계하고, 세부 내용과 로드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인수위 내부에선 공약의 효과가 크지 않고,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로 현금성 공약 중 일부는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당장 6월 지방선거에 미칠 악영향이 크다는 정치적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런 신중론은 자취를 감췄다.

정부 내에선 기초연금 인상에 대해 특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65세 이상 고령층 중 소득액 기준 하위 70%를 대상으로 30만원을 주고 있는데, 이를 40만원으로 10만원 늘려주겠다는 게 윤 당선인 공약이다. 필요한 예산은 8조8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를 고려할 때 필요 예산이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기초연금 수급자를 628만 명으로 예상한다. 2017년 487만 명에서 5년 만에 141만 명(29%)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초연금까지 인상되면 재정 부담은 더 커지게 된다.

인수위는 이에 따라 기초연금을 향후 5년간 두세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선 당시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윤 당선인과 동일하게 기초연금 10만원 인상을 공약했다.

부모급여 신설 및 장병 월급 인상의 경우 복지 예산 구조조정, 징모혼합제 등 군조직 개편과 연계돼 추진되고 있다. 부모급여가 신설될 경우 △출산 지원금(첫만남 이용권) 200만원 △임신바우처(건강관리) 100만원 △0~1세 영아수당 월 30만원 등 중앙정부의 출산·임신 지원금은 폐지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확장적 재정정책 물가 관리에 ‘독’인수위는 예산 구조조정을 통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엔 “의무 지출을 제외한 약 300조원의 정부 재량지출 사업비를 부처별로 평균 10%(30조원)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본예산 기준 607조7000억원 중 절반가량이 재량지출이다. 이 중 국방비와 인건비, 계속사업 예산 등을 제외하면 조정 가능한 예산 규모가 크지 않다는 것이 기재부 측의 설명이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은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를 고려한 재량지출 절감 규모는 매년 약 10조원을 웃도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공약 이행에 필요한 충분한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손실 보상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재원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한 예산은 35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지출이 늘어나는 사업 같은 경우 좀 더 신중하게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확장적 재정 정책을 지속할 경우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부채 및 환율 관리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미국 등 선진국이 시장 예상대로 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할 경우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파를 고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금리와 환율이 불안정한 시장에선 적자 국채를 대규모로 발행하기가 쉽지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년에 걸친 확장 재정 정책으로 이미 정부 부채 규모가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며 “구조적으로 정부 지출을 늘리는 정책의 도입은 물가 관리와 재정건전성을 함께 고려해 신중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좌동욱/황정환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