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겨울 강원 평창군에서 열린 지적장애인 스페셜올림픽. 열네 살의 쇼트트랙 선수가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출전한 모든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평창의 스타’로 떠올랐던 발달장애 2급 현인아 씨(24·사진)는 10년 뒤 어엿한 5년 차 바리스타로 인생 2막을 쓰고 있다. SPC행복한재단·푸르메재단이 운영하는 ‘행복한베이커리&카페’에서 근무하는 현인아 바리스타를 18일 만났다.
현씨가 약 10년간 이어온 선수생활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것은 외로움 때문이었다. 스케이팅은 목표 설정도,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도 모두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열여덟 살이 되던 해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교육과정에 우연히 참여하면서 바리스타의 꿈을 키웠다. 스페셜올림픽은 연금이 없기 때문에 바리스타가 돼 빨리 경제적 자립을 이루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2년간 교육과정을 이수한 뒤 일을 시작한 곳이 행복한베이커리&카페다.
현씨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운동이 벅차기도 했고, 누군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며 “바리스타는 ‘커피’라는 매개체로 같이 일하는 동료뿐만 아니라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다.
쇼트트랙 선수와 바리스타는 접점이 없는 것 같지만 ‘정석’을 따르는 것만큼은 닮았다고 현씨는 말했다. 그는 “경기 규정을 지켜가며 경기에 참가해야 하듯이 바리스타도 커피 제조 순서를 지키고 커피머신을 잘 관리하기 위해 무수한 훈련을 거쳐야 한다”며 “처음 커피를 접했을 때는 과테말라, 케냐, 에티오피아 등 각종 원두를 향만으로 구분하기 위해 눈을 가리고 연습했다”고 말했다.
현씨가 스케이팅을 배운 것은 아홉 살 때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가 계기였다. 그때 기른 능력 중 하나는 남다른 집중력이다. 현씨의 어머니는 “스케이트 날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딸에게 날은 날카로운 흉기가 아니라 집중력을 길러주는 교구가 됐다”고 회상했다.
현씨는 동료들이 인정하는 ‘체력왕’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5시간 정도 근무한다. 직장인이 많이 방문하는 시간대에는 한꺼번에 서른 잔의 커피를 만든 적도 있다. 아메리카노, 라테, 스무디 등 종류도 다양하다. 현씨는 “선수생활은 그만뒀지만 매일 스쿼트를 계속하고 있다”며 “선수 시절 기초체력을 쌓은 덕인지, 오랜 시간 서 있어야 하는 이 일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현씨의 꿈은 자신만의 카페를 차리는 것이다. 카페 브랜드는 ‘거북이 카페’라고 지을 생각이다. 대표 메뉴는 가장 좋아하는 캐러멜마키아토. 그는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여유를 가득 담은 커피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글=한경제/사진=김병언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