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아프간의 '아편 전쟁'

입력 2022-04-17 17:44
수정 2022-04-18 00:10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가 마약 원료로 쓰이는 양귀비 재배를 전격적으로 금지하자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탈레반은 1차 통치기(1996~2001년)인 2000년에도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다가 실패했다. 2001년 미국에 의해 정권을 잃은 뒤엔 아편 판매수익을 반군활동 자금줄로 활용해왔다.

지난해 정권을 탈환한 탈레반이 양귀비 재배 단속에 다시 나선 것은 최대 아편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당국은 “올해 수확한 양귀비도 폐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외 자산 동결 해제와 원조, 송금 등을 겨냥한 조치다.

다만 이를 대체할 다른 작물을 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높은 수익성과 가뭄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마땅한 대안 작물도 없다. 양귀비는 재배 과정에서 물이 거의 필요 없고 심은 뒤 5개월만 지나면 수확할 수 있다. 아편으로 가공하면 냉장 시설이 없어도 수년간 보관할 수 있고 수익성도 높다.

양귀비의 최대 생산지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이 맞닿은 ‘황금의 초승달 지대’다. 그중에서도 아프간 생산량이 전 세계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아프간의 연간 아편 관련 수익은 최대 28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 이른다.

현재 아프간 소작농과 일용직 노동자 대다수가 아편 밀매에 종속돼 있다. 이들은 양귀비를 수확하고 아편을 추출해 매달 300달러 가까운 수익을 올리고, 양귀비를 담보로 잡혀 생필품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만큼 저소득층의 양귀비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탈레반 정부가 국제사회로부터 공식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 ‘마약의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되는 것이 중국의 움직임이다. 아프간과 국경을 접한 중국은 아편이 신장위구르자치구를 통해 유입될 수 있고, 마약 밀매 세력이 신장의 극단주의 테러 조직과 결탁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아프간에 양귀비 대체작물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과의 ‘아편 전쟁’으로 혼쭐이 났던 중국으로서는 더 이상 나 몰라라 하기도 어렵게 됐다. 옛날 당 현종의 후궁 양귀비 때문에 나라가 파탄 난 흑역사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럴 만하다. 소련과 미국이 떠난 아프간 땅에서 중국은 어떤 식물의 씨앗으로 ‘아편 대결’을 벌일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