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는 120년 동안 지속돼온 팽창시대가 마무리되고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인구구조 변화가 앞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올해 들어 이런 내용의 보고서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계 ‘인구절벽’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이다. 1년 전 ‘중국 인구가 감소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를 계기로 제기된 중국 인구절벽 논쟁이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중국 인구증가율은 0.03%에 그쳐 사실상 정점에 도달했다. 한국 인구(내국인 기준)도 내년에는 5000만 명 선이 무너질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의 인구 증감은 세계 노동시장에 중요한 변수다. 2차대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코로나 사태 등으로 제도권 밖에 머물던 저개발국의 노동력 공급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인구 증감은 세계 노동력 공급 및 임금 수준 결정에 중요 변수로 대두되고 있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방화 정책을 표방한 이후 세계 경제는 중국 인구와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스위트 스폿’ 기간을 누려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생산가능인구가 글로벌 고용시장에 본격 편입하면서 세계 경제는 ‘고성장-저물가’라는 종전 경제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경제 국면으로 들어갔다.
중국의 인구절벽이 세계 경제의 최대 복병 중 하나로 대두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다. 찰스 굿하트 영국 런던대 교수는 《인구 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이란 저서에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무렵 세계 인구가 줄어들면 세계 물가는 10%대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구절벽 논쟁이 세계 경제 성장 및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총공급 곡선(AgS: 노동시장과 생산함수를 통해 도출)과 총수요 곡선(AgD: 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에 의해 도출) 이론을 통해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 참조>
세계 인구가 늘어 총공급 곡선이 오른쪽(AgS0→AgS1)으로 이동하면 성장률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율은 낮아지는 ‘골디락스’ 국면이 도래한다. 역으로 세계 인구가 줄어 총공급 곡선이 왼쪽(AgS0→AgS2)으로 이동하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이 발생한다.
세계 경제가 인구절벽 탓에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진다면 인구 증가 시기에 잠복해 있던 ‘빚의 복수’가 시작되고 자산 거품도 꺼질 가능성이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빚은 2007년 113조달러에서 올해 1분기에는 230조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빚 부담을 연착륙시키지 못하면 세계 경제가 ‘복합불황’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통화정책 수단이 정상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경기와 자산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면 경제주체들의 빚 상환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구통계학적 이론은 인구구조 변화로 실물경제와 자산 가격을 진단하고 예측한다. 미국과 달리 은퇴 이후 삶의 수단으로 주식을 보유하는 비율이 낮은 한국에서 인구통계학적 이론은 적어도 아파트 시장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960년대부터 집값 잡기에 총력을 쏟았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세대가 지날수록 자산계층이 두터워지면서 아파트 가격은 한 단계씩 뛰었다.
국내 주가도 전체 인구에서 핵심 자산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시기에는 추세적으로 올랐다. 하지만 향후 핵심 자산계층 비중이 감소하기 시작하면 국내 주가는 의외로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어서다. 은퇴 이후 주식을 포함한 고위험 자산부터 처분하기 때문이다.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높고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대신 고령화 속도는 빠른 국가다. 중국과 우리의 인구절벽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만큼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대비해 놓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