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두 개의 아마존이 있다. 글로벌 기업 아마존과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브라질의 아마존이다. 둘의 가치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경제·행정적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가치’는 어떻게 매길까.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아마존의 가치는 시가총액으로 따져볼 수 있다. 지난 14일 기준으로 1조5439억달러(약 1899조원)다. 이 기업의 현재 실적과 미래 성장성을 셈한 수치다. 하지만 아마존 열대우림의 시장가치를 현시점에서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열대우림이 파괴돼 콩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키우는 농장이 들어선 뒤에야 사람들이 아마존의 시장가치를 산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열대우림 파괴에 따른 기후변화 비용 등은 빠져 있다. 열대우림이 완전히 망가진 뒤에야 인류는 제대로 산정된 고지서를 읽게 될 것이다.
《초가치》는 ‘가치=가격’ 등식이 늘 성립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영국과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사람이 쓴 책이 맞는지 다시 한번 뒤적이게 한다. 마크 카니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배운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몸담으며 실물경제를 익혔다.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로 일한 건 2008~2013년이다. 당시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캐나다가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빨리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곧바로 경제 규모가 더 큰 영국 중앙은행 총재(2013~2020년)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64년 영국 중앙은행 설립 이후 영국인이 아닌 사람이 총재가 된 건 그가 처음이었다.
카니는 10년 넘게 글로벌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키 맨’이자 경제학을 깊이 파고든 학자였다.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건 경제학의 근본적 질문 중 하나인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였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1~2장은 가치이론의 역사를 다룬다.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의 가치이론부터 신자유주의까지 짚는다. 비유가 탁월하다.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회전축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꿨다면, 신고전주의자들은 가치이론의 축을 생산의 객관적 요소에서 소비자가 인지하는 재화의 주관적인 가치로 바꿨다”는 식이다.
저자는 수없이 많은 경제학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장 가격을 매길 수 없거나 시장 가격이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 영역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그런 예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가치를 매기기 힘든 영역이다.
카니는 “기후변화는 현세대가 해결해도 직접 받을 혜택이 없지만 해결하지 않더라도 손해 보는 게 없다”며 “기후변화를 내팽개친 데 따른 비용을 미래 세대가 떠안는다는 점에서 세대 간 형평 문제를 낳는 대표적인 예”라고 했다. 그는 이런 점을 들어 기후 대응은 지금 당장은 손해 보는 가격이더라도 서둘러 돈을 지불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했다.
그는 시장의 기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시장은 △희소성 △필요성 △생산과정 비용 △교환 가치 등 복잡한 요소를 빠르고 정확하게 가격에 반영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비효율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경고하는 건 “사회의 가치관이 오작동하면 시장도 오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은 사회적인 가치관을 반영한다. 우리가 시장이 잘 돌아가는지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아서 움직이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면 시장은 사회의 가치관을 좀먹는다. 우리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사회적 자본을 재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한 사유재산, 공정한 법률제도 등 핵심적인 사회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카니는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시절 최전방에서 맞닥뜨렸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로 든다. 날마다 조여오는 유동성 위기를 등골이 서늘하게 묘사한 뒤 이런 결론을 낸다. “이것은 시장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이 시장의 한계와 충돌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저자는 지도자와 기업가, 투자자, 국가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방향도 제시한다. 이들에게 요구되는 공통적 가치관은 역동성, 회복력, 지속 가능성, 공정성, 의무, 연대, 겸손함이다.
경제사에서부터 암호화폐, 탄소중립에 이르는 가치론의 향연은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800페이지에 달하는 압도적 분량은 진입장벽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일단 책을 집어들면 SNS의 조각 글로는 대체할 수 없는 종이책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