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블랙리스트가 난리다. 전 정부의 대표적 적폐로 거론됐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아직 뇌리에 깊숙한데 ‘환경부 블랙리스트’ 논란을 빚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징역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가 본격화했다. 교육부 등 전 부처로 확산할 조짐도 보인다.
정권교체기에 공공기관장 및 주요 인사 임명이 이뤄지는 사례가 있다 보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이전 정권에서 임명한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만 봐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인사는 35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 및 상임감사 총 460명(공석 23명 포함) 중 63%에 해당하는 290명이다.
얼마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은행 총재 후보를 지명해 파열음이 나기도 했다. 또 신임 감사위원 임명을 두고 신구(新舊) 정권이 충돌했다. 감사원이 “정권 이양기 감사위원 임명 제청권 행사는 부적절하다”고 입장을 밝혀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정권 보험을 위한 ‘알박기 인사’ 논란을 낳았다.
알박기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기관장일까? 국민일까? 전문성을 결여한 기관장 인사로 인한 방만한 경영과 만성적자는 고스란히 국민이 부담으로 떠안는다. 무심한 국민들에겐 내 살을 깎아 먹는 빚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국가 비전과 방향성을 함께 가지고 국정운영을 이끌어갈 ‘손발이 맞는’ 팀을 꾸리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일까. 임기가 아직 남은 기관장 및 인사에 대해 사표를 일괄 징수하거나 사퇴 압박을 하는 등 압력을 행사해 쫓아내기도 한다. 한데 손발이 맞는다는, 소위 국정철학을 깊이 이해한다는 명분의 실체성은 무엇일까. 진정이라면 임기 말 인사가 이뤄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솔직히 ‘내 편 자리 더 챙기기’라고 하면 될 텐데….
어찌됐든 정권 교체기마다 이뤄지는 일련의 보은 인사 논란에서 자유로운 정권은 없었다. 현 정부도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겠다는 공약을 강하게 내세웠지만 결국 이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알박기’의 그림자이자 동전의 양면이다. 신구 권력 충돌의 원인도 내 편 챙기기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번 블랙리스트 논란과 처벌은 또 정권이 바뀌어도 물러나지 않아도 되는 더욱 강력한 알박기 인사로, 낙하산 인사로 번질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권력의 행사일까. 이대로라면 블랙리스트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양산될 것이다. 블랙리스트를 없애는 첩경은 그 자리에 적합하고, 그 자리에 딱 맞는 인사를 임명하는 인사 시스템이다. 중도에 강제 사퇴나 내 사람 심기라고 하는 폐해가 단절될 수 있다. 그러려면 국민의 눈을 무섭게 알아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 온 보은 인사의 고리를 깨려면 원칙적으로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인사를 하든가, 아니면 최소한의 시스템 장치를 통해 쓸 만한 사람을 임명할 수 있도록 엄격히 다뤄야 한다. 쓸 만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 블랙리스트다. 다만 정치적 이유로 임명하거나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비전문가를 임명한 경우에는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당연히 솎아내야 할 대상이다. 쓸 만한 사람이 임명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임명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솎아낼 수 있도록 하려면 시스템 보완이 필수다. 더불어 공신의 적절한 처리와 대우를 공론화할 지혜도 모아야 한다. 여야를 떠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걸림돌을 줄여주는 대승적 결단과 솔직함이 필요하다.
결국 정권을 위한 인사 관행이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고 정권 유지 동안에 보은 인사를 통해 자리를 꿰찬 사람 또한 희생타다. 이건 법 이전의 문제다. 권력자의 자의적 권력 유용으로 인한 희생자들이다. 국민을 도외시함으로써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고 그렇게 임명된 장관들이 속죄양이다. 몸통은 존재한다. 그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