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 한 달이 다 되도록 윤석열 정부의 국정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장기 잠재성장률이 0%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에다 청년·미래 세대를 위한 노동·연금 개혁이 시급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지만 이와 관련한 인수위의 아젠다(의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수위 기간에 이런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중장기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당장 눈앞에 떨어진 현안에 ‘땜질식’ 대응만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수위는 지난달 18일 출범해 대통령 취임 하루 전인 5월 9일까지 53일간 활동한다. 13일을 기점으로 반환점을 도는 것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지난 11일 “역대 인수위 가운데 이렇게 잡음이 적은 인수위가 없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인수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꼬집었다. 인수위에 참여한 한 인사도 “디테일한 정책과 현안은 논의가 활발하고 결과물도 나오고 있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인수위는 잠재성장률 제고 방안과 노동·연금 개혁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인수위가 최근 내놓은 정책도 대형 아젠다와는 거리가 있다. 인수위가 11일 국민의 법적·사회적 나이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필요 여부를 떠나 만 나이 문제가 인수위에서 시급히 다뤄야 할 만큼 중요한 이슈였느냐는 의문이 많다. 인수위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1년 배제’ 방침을 밝힌 것도 현안 대응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집값 불안을 증폭시킨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제를 어떻게 정상화할지에 대한 로드맵은 빠져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선 때부터 ‘정권교체’구호를 제외한 아젠다 준비 부족, 대선 후 곧바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이슈 매몰,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둔 여론 눈치 보기 등이 겹치면서 ‘인수위의 아젠다 실종 사태’가 벌어졌다고 지적한다. 정치권 한 인사는 “인수위 기간에 국가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면 정권 출범 후에도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 채) 헤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병욱/정의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