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후 최대’ 재건축 사업지로 꼽히는 둔촌주공은 노후 아파트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분쟁을 망라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 둔촌주공을 두고 ‘재건축 분쟁 백과사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석면 처리 과정을 둘러싼 논란으로 1년 넘게 시간을 허비한 이후에는 정부의 ‘분양가 옥죄기’에 발목이 잡혔다. 분양 일정이 지연되자 분양가를 두고 조합 내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여기에 시공사와의 공사비 법적 분쟁에 따른 공사 중단 사태까지 겪었다. 수십 년 정비사업에 몸담은 전문가들도 “둔촌주공과 같은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꼬일 대로 꼬인 둔촌주공 재건축사업
둔촌주공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5930가구의 노후화된 아파트를 헐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으로 다시 짓는 사업이다. 일반 분양 물량이 4786가구에 달해 수십만 명의 예비 청약자가 눈독을 들이는 강남권 단지다.
둔촌주공 사업은 조합원만 6100여 명에 이르는 만큼 조합원 간 갈등이 일정 부분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공사비만 3조2000억원(변경계약서 기준)이니 이권 다툼도 치열할 것이란 얘기다.
문제는 그런 배경을 이해하더라도 유난히 사업 과정이 험난했다는 것이다. 석면 철거 공사가 대표적이다. 2019년 둔촌주공은 철거 진행 중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철거 작업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나섰고 이 과정에서 3~6개월 예정됐던 철거 기간은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분양가를 제한하는 정부 정책도 큰 걸림돌이었다. 둔촌주공은 철거 직후 2020년 일반 분양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3.3㎡당 2978만원으로 통보하면서 또다시 사업이 지연됐다. 당시 조합에선 3.3㎡당 3550만원의 분양가를 예상했던 만큼 “정부안을 받아들여 빨리 사업을 진행하자”는 조합원과 “후분양 등을 노리자”는 조합원 등으로 갈등이 심화했다.
둔촌주공 분양가는 아직 미정이다. 최근 분양가 산정에 기초 자료로 쓰이는 택지비만 ㎡당 1864만원으로 확정됐다. 2년 새 부동산값이 폭등한 덕분에 이 택지비를 기초로 하면 3.3㎡당 3500만~4000만원의 분양가가 산정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분양·입주 일정 ‘안갯속’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합 집행부가 갈렸다. 이 과정에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졌다. 공사 중단 사태를 불러온 둔촌주공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과 조합 간 공사비도 마찬가지다.
시공사업단은 2020년 6월 둔촌주공 재건축조합과 기존 계약서상 2조6000억원이던 공사비를 3조2000억원으로 변경하는 증액 계약을 맺었다. 기존 설계보다 가구 수와 상가 건물이 추가되고 자재를 고급화하면서다. 현재 조합은 전임 조합이 맺었던 이 증액 계약서가 무효라고 주장한다. 둔촌주공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오는 16일 총회를 열고 표결을 통해 증액 계약서를 무효화할 것”이라며 “시공사업단이 공사를 10일 이상 중단하면 계약 해지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은 서울동부지방법원에 계약 무효소송도 제기했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전임 조합과의 계약이 잘못됐다면 누굴 믿고 계약해야 하느냐”며 “조합이 계약서상의 공사비를 인정하지 않으면 공사를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공정률은 52%를 넘어섰고 공사비만 1조7000억원이 들었다. 일반 분양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탓에 공사 기간이 증가할수록 금융비용만 눈덩이처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재건축 사업은 착공과 동시에 일반 분양으로 확보한 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고 부족한 부분은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낸다.
서울시도 혀를 내두르고 있다. 서울시는 정비사업 베테랑 3명을 코디네이터로 보내 작년 말부터 지난달 말까지 10여 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협상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코디네이터는 “법적 다툼으로 가면 61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장 피해를 본다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꿈쩍하지 않았다”며 “지금이라도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조합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은 서로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합은 ‘시공사 교체 카드’, 시공사는 ‘유치권 행사 카드’까지 검토 중이다. 업계에선 지금 시공사를 바꾸는 건 양측 모두 손해가 막대할 것으로 본다.
심은지/이혜인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