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힐튼호텔 철거 논란

입력 2022-04-12 17:29
수정 2022-04-13 00:20
서울 남산의 힐튼호텔 철거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힐튼호텔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건축가 김종성 씨에게 설계를 맡겨 1983년 말 개장했다. 외환위기로 1999년 싱가포르 회사에 넘어간 뒤 밀레니엄힐튼호텔로 재출범했지만, 수익성 악화로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에 팔렸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 건물을 헐고 2027년까지 오피스·호텔 등 복합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논란의 핵심은 “현대 건축자산을 허물지 말자”와 “민간 시설 보존을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로 요약된다. 한쪽에서는 “힐튼호텔이 한국 현대건축의 아이콘이자 수준 높은 디테일과 완성도를 지닌 건물이므로 보존하자”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선 “현대 건축을 지키려는 시도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층고가 낮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운 데다 민간기업에 적자 운영과 건물 보존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상업용 건물의 가치와 활용도를 높이면서 재산권도 보호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자인 김종성 건축가는 최근 토론회에서 “건물 수명은 오래 갈 수 있지만 기능과 용도는 바뀌게 마련”이라며 “기존 아트리움(건물 내 중앙 공간)은 살리고 640실을 200실로 바꾸는 등 이윤도 창출하고 건축 정신도 살리는 윈윈전략을 찾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곳의 허용 용적률은 600%여서 현재(350%)보다 활용할 여지가 많다.

돌이켜보면 건축가 김수근의 유작인 서울 강남 르네상스호텔은 29년 만에 철거된 뒤 초대형 복합건물 센터필드로 재탄생했다. 조선팰리스호텔이 들어서면서 더 유명해졌다. 김수근의 다른 작품인 한국일보 옛 사옥도 재개발됐다. 남산 타워호텔 또한 40년 만에 ‘반얀트리 서울’로 리모델링됐다.

도심 건물은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도시개발계획, 미래 위상 등과 연계돼 있다. 그런 점에서 힐튼호텔 자리는 인근 서울역과 남산을 아우르는 입지, 도시정비지구 활용, 랜드마크 역할, 외국 관광객 유치 등 활용 가능성이 매우 크다.

반면 옛 서울역 건물은 활용도를 살리지 못해 박제된 기념관으로 전락했다. 도쿄역 건물이 호텔, 주변 상권과 함께 재생돼 활기를 띠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공문화재조차 이런데 민간 건축물은 더 그렇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이런 청사진을 갖고 김종성 건축가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