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대표의무에 중립의무도 지라"는 대법원 판결

입력 2022-04-12 18:46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복수노동조합이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의 단체교섭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여 교섭을 요구하거나(제29조의2 제1항 본문),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기한 내에 사용자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기로 동의한 경우 각각의 노동조합과 개별교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제29조의2 제1항 단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친 경우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는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동조합 또는 그 조합원 간에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을 하여서는 안 되는 공정대표의무를 부담하고,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경우 차별을 당한 노동조합은 노동위원회에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을 요청할 수 있다(노조법 제29조의4 제1항, 제2항).

한편, 교섭창구단일화를 통해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선정하여 교섭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 사용자의 개별교섭 동의를 통해 교섭을 진행하는 경우에는, 사용자는 각 노동조합을 평등하게 대우하여야 하고, 각 노동조합의 성향에 따라 차별을 하여서는 안 되는 중립유지의무를 부담한다고 해석되고 있었다.

법원도 ‘사용자가 노조법 제29조의2 제1항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교섭창구를 단일화하지 않고 복수의 노동조합과 개별적으로 교섭을 진행하는 경우, 각 노동조합은 고유의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 체결권을 가지므로 사용자로서는 어느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성실히 단체교섭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개별교섭 과정에서 각 노동조합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각 조합의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 체결권을 평등하게 존중하여야 하는 중립의무를 부담한다’라고 하여 개별교섭시 사용자가 부담하는 의무로서 사용자의 중립의무를 명시적으로 인정해왔다(대전지방법원 2015. 9. 2. 선고 2014가합102474 판결, 울산지방법원 2020. 6. 26. 선고 2019노1258 판결).

그러던 중 2021년 1월 5일 “제1항 단서에 해당하는 경우[개별교섭을 하는 경우] 사용자는 교섭을 요구한 모든 노동조합과 성실히 교섭하여야 하고, 차별적으로 대우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제29조의2 제2항 규정이 신설되어 중립의무가 명문화되었다. 이러한 중립의무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예외로서 교섭창구단일화를 하지 않고 개별교섭을 하는 경우에 부담하는 의무로서, 교섭창구 단일화절차를 거친 경우 사용자가 부담하는 공정대표의무에 상응하는 의무이다.

그런데 2021년 8월 19일 대법원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건에서, 교섭창구단일화를 거쳐 교섭대표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사용자는 중립의무를 부담한다는 전제에서 사용자의 중립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 더 나아가 소수노조에 대한 불이익취급 및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상고 기각으로 확정하였다(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9다200386 판결). 이러한 대법원 판결을 통해, 교섭창구단일화를 한 경우에 사용자가 공정대표의무 외에 중립의무까지도 부담하는가라는 논쟁이 촉발되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의 입장과는 달리,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서 구분되는 것처럼 공정대표의무와 중립의무는 본질적, 체계적으로 다른 단체교섭 방식에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도 판시한 것처럼 공정대표의무는 단체교섭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자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다른 노동조합에게도 미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이다. 즉,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교섭창구를 단일화하는 목적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내에 서로 다른 내용의 단체협약이 적용되는 불합리한 사태를 방지하려는 데 있고, 교섭대표노동조합이 교섭대표권을 공정하게 행사하지 않으면 다른 노동조합이나 조합원의 이익이 제대로 반영될 수 없기 때문에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목적에 반하며, 따라서 교섭창구단일화제도는 교섭대표노동조합이 교섭대표권을 공정하게 행사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야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정대표의무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에서 본질적으로 유래하는 것이다.

한편 교섭창구단일화를 하지 않고 개별교섭을 하는 경우에는 교섭대표노동조합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정대표의무는 애초에 적용될 여지가 없고, 각 노동조합은 각자의 방향과 이익을 추구하면 될 뿐이며, 사용자가 각 노동조합에 대하여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할 중립의무만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대상 판결의 경우 교섭창구단일화를 하여 교섭대표노동조합과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상황임에도 사용자가 소수노조에 대하여 중립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아한 부분이 있다. 즉, 교섭창구단일화를 했으면 교섭대표노동조합만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리를 가지고, 교섭대표노동조합이 사용자와 맺은 합의 및 단체협약의 효력은 소수노조에도 미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사용자가 ‘소수노조와 성실히 교섭할 의무’라거나 ‘소수노조를 차별적으로 대우하지 않아야 할 의무’를 부담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교섭대표노동조합이 사용자와 체결한 합의 및 단체협약에 소수노조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교섭대표노동조합이나 사용자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해결될 수 있고, 중립의무 위반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사실관계 여하에 따라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책임 성립을 인정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위 대법원 판결에는 동의하기가 어렵고, 단체교섭 방식인 교섭창구단일화와 개별교섭의 차이를 오해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