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직접수사 관련 규정을 삭제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을 위한 형사법 개정 강행에 나서자 검찰과 국민의힘에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보다 다양한 양상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 검찰 각각 속내와 갈등을 읽어볼 수 있죠.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강행
먼저 더불어민주당의 강행 움직임 뒤에는 강성 지지층의 입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대선 등에 밀려 지지부진했던 검수완박을 현 정권 내에 완결지어야 한다는 지지자들의 압박에 의원들이 속도를 내는 것이죠.
이번 갈등의 시발점은 사보임이었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박성준 민주당 의원과 기획재정위원회 양향자 무소속 의원을 맞바꾸는 사보임을 결정했습니다. 이를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강행 처리를 위한 사전 작업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습니다. 사보임의 목적이 법사위에서 핵심 쟁점 안건을 다루는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 것이죠. 국회선진화법상 안건조정위는 다수당과 그 외의 상임위원의 비율을 동수로 구성해야 합니다. 상임위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둘뿐일 때 3대3 동수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가 무소속 의원 합류 시 3대2대1, 즉 ‘범민주 4’ vs ‘국민의힘 2’ 구도로 바뀌는 것이죠.
형사법 개정안은 1년여 전인 작년 2월 발의했습니다.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고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마저 이관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작년 3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검수완박은 헌법 정신 파괴”라고 반발하고 검찰을 떠난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면 아래에 있던 법안이 대선 후 다시 떠오른 이유는 정권 교체를 앞두고 검수완박을 실현해야 한다는 지지자들의 주장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자들의 의견을 살펴야 하는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즉, 이번엔 법사위를 지나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죠.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12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검수완박 법안에 대한 강행 처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2 공수교대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강행을 국민의힘에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지난 10일 권성동 국민의힘 신임 원내대표의 발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행이자 천인공노할 범죄다.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의 실권자들, 각종 비리 의혹받는 이재명 전 대선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의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는 것 아닌가. 검찰을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개혁이 다 이뤄졌다고 1년 전에 자평해놓고 이제 와서 또다시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겠다고 주장하며 사보임을 통해 법사위 안건조정위의 무력화를 꾀하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다.”
172석을 확보한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에선 패배했지만, 국회에선 여전히 ‘입법권력’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검수완박 법안’ 역시 강행한다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새 정부 출범 전에 검찰의 힘을 뺄 수 있다는 셈법이 가능합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당선인이 나온 만큼, 앞으로 검찰에 힘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윤 당선인이 민정수석실을 없애고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등 대통령과 검찰 간의 접점을 차단해 불필요한 오해 소지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검찰에 평생을 몸담아온 윤 당선인의 이력과 그동안 함께해온 검사들의 영향력을 가벼이 볼 수 없죠.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에 강한 드라이브를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반면, 국민의힘에선 검경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등으로 한껏 무뎌진 검찰의 칼날을 다시 벼리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의 강행을 저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3 철면피
검수완박의 대상인 검찰 내에서도 내홍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그 중심에 선 이는 이복현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2기)입니다. 그는 10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김오수 검찰총장 등 현 검찰 지휘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앞서 지난 8일 김 총장과 전국 고검장들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에 대해 반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전국 대부분의 검사도 연이어 검수완박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이 부장검사가 문제 삼은 건 대검의 공식 반대 입장문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바로 이거죠.
“검찰개혁 논의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검찰 스스로 겸허히 되돌아보고,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의 실효적 확보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여 시행하기로 하였음”
이와 관련해 김 총장은 11일 오전 10시 수도권 검사장을 중심으로 전국 검사장 회의를 열 예정입니다. 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자리에 모이신 분들이 ‘검찰개혁’이라는 간판을 걸고 무슨 일을 벌여오셨는지, 그로 인해 현재 검찰이 어떤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지를 지켜봤다. 그 언어의 마술사들께서 이번에는 ‘수사의 공정성, 중립성’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무슨 짓을 하려나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 부장검사는 현 검찰 지휘부를 가리켜 “직접 지난 수년간 소위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하셔서 현재의 개판인 상황을 초래하신 장본인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김 총장과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검찰개혁 관련 법령이 개정될 당시 각각 법무부 차관과 검찰국장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 부장검사는 “본인들의 과거는 까맣게 잊은 채, 앞으로 가열차게 검찰개혁을 추진해나가자고 선언하시는 그 의기양양함을 보니 영화 ‘메멘토’의 한 장면으로 들어간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장검사는 검찰 지휘부가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인다며 ‘철면피 스미스 씨’라는 표현도 썼습니다.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한 이들이 해방 후 미군들에 잘 보이려 영어 이름을 쓴 것을 빗댄 것이죠.
“‘나카무라 스미스’ 씨도 우리의 직장동료이니 잘 지낼 수 있으면 원만히 지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과거 창씨개명 시절 행적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과 정도는 있어야 같은 구성원들에 대한 예의 아니겠습니까. 반성 없는 자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매우 큰 현실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친절한 금자씨’는 좋아합니다만, ‘철면피 스미스 씨’는 사절입니다.”
검수완박을 계기로 검찰 내에서의 갈등도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미 서초동 안팎에서 ‘윤석열 사단’의 중앙무대 복귀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이번 논란은 신구 권력 간의 대결로 점철될 수 있습니다. ‘삼바 수사팀장’을 거친 이복현 부장검사 역시 윤석열 사단의 핵심 멤버입니다.
오늘 열릴 전국 검사장 회의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내일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의원총회도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이 검수완박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 같습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