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치만 1조"…유통주인지 건설주인지 헷갈리는 이곳

입력 2022-04-10 09:20
수정 2022-04-10 10:07

‘1세대 도심형 아울렛’ 세이브존의 존재감이 유통업계에서 지워져 가고 있다. ‘대세’가 된 온라인 전환 흐름에 최근 수년간 전혀 대응하지 못한 가운데 코로나19 직격탄까지 맞은 탓이다.

다른 유통업체들은 소비 트렌드 변화에 맞춰 럭셔리 상품을 강화하고, 새벽배송과 퀵커머스 서비스 등을 발 빠르게 도입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세이브존은 이런 움직임이 전무하다. 유통 트렌드 대응에 실패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세이브존 운영사 세이브존I&C는 지난해 122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코로나19 전 2019년(1592억원)에 비해 23.2% 줄어든 수치다.

영업이익은 110억원으로 2년 전(295억원)에 비해 62.7% 쪼그라들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세이브존I&C는 지난해 5월 7일 4230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별다른 반등 없이 줄곧 하락해 25.5% 떨어졌다.

세이브존은 이랜드 점포개발팀장 출신인 용석봉 회장이 1998년 설립한 회사다. ‘도심형 아울렛’ ‘지역백화점’을 표방하며 이월상품과 기획상품 등을 주로 판매한다.

용 회장은 경기 고양시 화정동에서 부도를 낸 상가를 인수해 세이브존 1호점을 냈다. 2002년 한신코아백화점을 인수하는 등 2000년대 들어 사세를 부쩍 키웠다. 점포 대부분이 아파트촌에 있어 지역 주민들을 충성 고객으로 끌어안는 전략으로 백화점·대형마트와는 또 다른 영역을 구축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 본격화한 온라인 전환 흐름에 뒤처지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세이브존은 아직 공식 온라인몰도 구축하지 못했다. 네이버쇼핑에 입점하는 형태로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지만, 상품과 가격 경쟁력 모두 다른 유통업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스타필드’ 등 교외형 프리미엄 아울렛이 인기를 끌면서 도심형 아울렛의 존재 의미도 희미해졌다. 세이브존은 2011년 전주점 이후 10년 넘게 신규 출점을 하지 않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선식품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동네 주민들이 세이브존 점포를 방문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치만 최소 1조원” 유통업계에선 세이브존I&C가 각 지역 ‘알짜배기’ 땅에 6개 점포를 모두 직접 소유하고 있는 게 반전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 회사는 스포츠센터와 주차장, 영화관 건물도 소유해 임대수익을 올리고 있다. 주요 유통사들이 ‘세일즈 앤드 리스백’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해 이를 사업 경쟁력 강화에 투입하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는 부동산 개발 전문가인 오너 용 회장과 김현동 세이브존I&C 대표의 이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김 대표는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보유한 ‘부동산 전공’이다. 2017년 부동산 투자 관련 서적까지 냈다.

이에 따라 요즘 유통·증권업계에서는 “세이브존I&C는 유통사라기보다, 부동산 개발사로 보는 게 맞다”는 얘기가 정설로 통한다. 지난해 말 기준 세이브존I&C의 유형자산(4745억원) 중 토지 및 건물 가치는 4109억원에 달한다.

이는 시가총액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그나마 2009년 이후 13년간 자산재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데 따른 것으로, 현 시세를 고려하면 부동산 가치만 1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유통업종을 담당하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성장 매력은 약하지만, 요즘과 같이 변동성 장세에 대응할 자산주로서의 가치는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세이브존은 코로나19 악재가 끝나면 경영 효율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획기적인 사업구조 변화를 추진해 재도약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지난해 말 세이브존I&C의 미등기임원 7명 중 5명이 퇴임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에 나서기도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여행 등 신사업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세이브존I&C는 2015년 인수한 여행 상품 가격비교 업체 투어캐빈을 2020년 말 흡수합병했다.

박종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