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현대자동차그룹의 경기 화성 남양연구소. 미래 모빌리티 연구개발(R&D)의 핵심 거점인 이곳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현대차그룹 간 뜨거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국가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모빌리티 기술·산업 육성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경제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 성장의 주체가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로보셔틀 내리니 로봇개가 안내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최상목 경제1분과 간사, 임이자 사회복지문화분과 간사 등과 남양연구소를 찾았다. 남양연구소는 R&D 인력만 1만2000명 규모로, 현대차그룹의 ‘두뇌’에 해당하는 핵심 조직이다. 현대차그룹에선 정의선 회장을 비롯해 박정국 연구개발본부장(사장), 공영운 전략기획담당 사장, 지영조 오픈이노베이션담당 사장 등이 인수위를 맞이했다.
안 위원장은 연구소 도착 직후 정 회장과 함께 자율주행차인 ‘쏠라티 로보셔틀’에 탑승해 행사장인 현대디자인센터까지 이동했다. 쏠라티 로보셔틀은 비상 상황에도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레벨 4’ 수준의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장착했다. 로보셔틀 시승은 안 위원장이 자율주행 기술에 높은 관심을 보여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안 위원장 등은 로보셔틀에서 내린 뒤 로봇개 ‘스팟’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행사장에 입장했다. 스팟은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세계 최고의 로봇 기업인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설계한 네 발로 걷는 로봇이다. 지난해부터 자동차 생산현장에 투입돼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자율주행·로보틱스·AAM 규제 풀어야”안 위원장 등은 연구소 및 미래 기술개발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현대차 측은 레벨 4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관련해 초상권 침해 이슈로 데이터 수집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보행자 인식 관련 규제를 완화하면 레벨 4까지 훨씬 좋은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위원장은 “어떤 규제가 없어져야 발전할 수 있을지 가감 없이 얘기하면 철저히 반영하겠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하반신 완전마비 환자를 위한 의료용 로보틱스에 대해 현동진 로보틱스랩장은 “신기술 허가를 신청하는 와중에 새로운 규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예상되기 때문에 방해가 될 규제는 미리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 항공 모빌리티(AAM) 상용화와 관련해선 비행금지구역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안 위원장은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 비행금지구역이 더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AAM 개발을 담당하는 이중현 팀장은 “다른 루트를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은 “도시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 섬이 많다”며 “섬에 계신 분들에게 AAM이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로 태워주며 “운전 잘한다” 치켜세워안 위원장 일행은 주행시험장으로 이동해 수소전기차 넥쏘와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 전기차 아이오닉 5, EV6, GV60 등을 시승했다. 정 회장이 엑시언트를 직접 운전하고 안 위원장은 조수석에 탔다. 이어 안 위원장이 GV60를 직접 몰 때는 정 회장이 뒷좌석에 탑승했다. 정 회장이 “제네시스(GV60) 운전 잘하시던데요”라고 말하자 안 위원장은 “의대 다닐 때 1종(면허)을 땄거든요”라며 “정 회장님도 트럭 잘 모시던데요”라고 답했다. 참석자들은 두 사람이 서로를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안 위원장은 끝으로 “미래 모빌리티산업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이을 국가 전략 산업이자 과학기술 중심 국가 건설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의미 있는 과학기술 현장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했다.
정 회장은 “자동차산업은 반도체,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수소연료전지 등 첨단 미래기술과 융합하고 서비스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모빌리티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강화해 대한민국이 글로벌 혁신 선도국가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대선 후보 시절 ‘초격차 기술 5개만 육성하면 삼성전자급 회사 5개를 가질 수 있고, 세계 5대 경제강국이 될 수 있다’는 국가 운영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과학기술 선도국가’ 공약에도 담겨 있다.
김일규/좌동욱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