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켈값 2배로 뛰자…도금업체 70곳이 쓰러졌다

입력 2022-04-08 17:27
수정 2022-04-09 01:31

코로나19에 따른 원자재 수급 불균형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대표적인 ‘뿌리산업’인 표면처리(도금)업계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도금 공정에 주로 쓰이는 아연, 니켈, 구리 등 비철금속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여기에 중간 유통업계와 대기업 1~2차 협력사 간 대립까지 겹치면서 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도금이 제조업 전반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자칫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도금업계가 휘청일 경우 제조업 전반의 ‘올스톱’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도금업계를 대표하는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최근 조합 회원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500~600%까지 치솟았다.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 납품 단가에 반영해 주지 않는 데다, 지급을 지연하는 문화도 위기를 가중시켰다. 박평재 표면처리조합 이사장은 “대기업은 평판 리스크를 우려해 납품 단가에 원자재 가격을 잘 반영해 주는 편이지만 1~2차 협력사는 이를 전혀 반영해 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세 업체가 많은 도금업계에선 납품 즉시 현금으로 입금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부분 납품 2~3개월 후 어음 지급이 업계 관행으로 굳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원자재 가격이 뛰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회피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원자재 중간유통업체의 폭리도 업계 위기를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이상오 표면처리조합 전무는 “원자재 중간상들이 가격이 고공 행진 중인 원자재를 더 비싸게 팔기 위해 물량을 제때 풀지 않으면서 업계의 손실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올 들어 원자재 중간유통업체들이 t당 300만원 받던 마진을 최근 1000만원 수준으로 올렸다는 것이다.

도금업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까닭에 소홀히 할 수 없는 업종이다. 기계, 자동차, 전자, 조선, 항공 등 전 산업의 ‘마무리 공정’에 필수적으로 적용되는 대표적인 뿌리 업종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 전면과 후면에 부착된 ‘H’ ‘KIA’ ‘G80’ 등 각종 금속 엠블럼에는 구리, 니켈, 크롬 도금 작업이 필수고 해당 작업은 100% 국내 도금업계가 담당하고 있다. 자동차 엔진과 공조기기 등 부품과 자동차 내장재의 금속 부분 등에도 모두 도금 기술이 들어간다. 국내에서 생산된 스마트폰 내부의 칩 커넥터 역시 전량 국내 업체의 금·은 도금 기술이 들어간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전자파 차폐용 섬유도 구리·팔라듐 도금이 필수다.

이 밖에 선박(배관), 2차전지(양극재 음극재), 노트북(CPU), 화장품(ABS 용기)을 비롯해 항공기·위성 부품과 자주포, 탱크, 미사일, 어뢰 등 방산 제품까지 국내 도금 기술이 안 들어간 업종을 찾기 힘들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금업계가 무너지면 완제품 가공 및 조립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국내 도금업체 수는 총 6454개로 업계 전체 연간 매출은 23조원, 종사자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 대부분 완성품이 되기 직전인 반제품 단계의 부품을 받아와 도금 처리를 한 후 대기업의 1~2차 협력사에 납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의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선 후진적인 납품 단가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재료 가격이 3% 이상 오르면 납품 단가에 반드시 반영하도록 강제하는 ‘납품 단가 연동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자재 가격과 납품 단가 문제가 장기화하면 국내 제조업 뿌리가 초토화될 수 있다”며 “기업의 사업 의지가 사라지기 전에 납품 단가 연동제 도입을 서두르고, 대기업, 중소기업, 정부 간 협의체를 가동해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